컨텐츠 바로가기

12.01 (일)

[시론] ‘플라스틱 국제협약’ 만들 부산회의에 쏠린 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플라스틱 국제 협약’ 제정을 위한 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가 일주일 일정으로 25일 부산에서 개막했다. 각 정부 정책 결정자들이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생애주기에 걸친 규칙을 만드는 중요한 회의다. 2022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첫 회의를 시작으로 이번이 마지막 회의다.

‘부산행 플라스틱 열차’가 인류를 ‘플라스틱 좀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열차가 될 수 있을까.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과 플라스틱 생명 연장의 꿈을 꾸는 사람들 모두의 시선이 부산으로 쏠리고 있다.



EU·아프리카 등은 감축에 지지

산유국과 중국 등은 감축에 반대

1차 폴리머와 소비 감축 규제를

중앙일보

부산 벡스코에서 25일부터 시작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회의(INC5)를 앞두고 지난 24일 오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16개 환경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 회원들이 'END PLASTIC' 글귀를 만드는 휴먼사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생산에 강력한 감축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최대 쟁점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 아프리카, 남미, 도서국들은 2040년까지 2025년 기준량의 40%를 줄이는 강력한 목표가 구체적으로 제시되기를 바란다.

반면 석유로부터 얻는 막대한 수입을 끊을 수 없는 산유국들과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중국 등 신흥국가들은 어떠한 감축 규제도 반대하고 있다.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주영국 에콰도르 대사) INC 의장은 쟁점 사항을 선언 수준으로 합의한 뒤에 추후 논의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했고, 이 안을 기반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협약 진전의 최대 난관인 생산 감축 쟁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생산 감축의 정확한 용어는 ‘1차 폴리머 생산 감축’이다. 플라스틱 전체 생산량 감축이 아닌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 신재(新材)의 생산 감축을 말한다. 1차 폴리머 감축은 플라스틱 원료로 투입되는 신규 석유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화석연료에서 유래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도 연결된다.

이런 이유로 강한 규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플라스틱이 야기하는 다양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1차 폴리머의 강력한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산유국과 석유산업계는 석유의 목줄을 죄는 비수로 여기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앙일보

지난 2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를 중심으로 '플뿌리연대'와 시민 1000여 명(주최추산)이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1123 시민행진'을 진행하는 모습. 그린피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차 폴리머 생산을 감축하면 플라스틱 사용량이 줄어들까. 현재 생산되는 플라스틱 원료의 90% 이상이 석유로 만든 신재이기 때문에 1차 폴리머 생산 감축은 플라스틱 총생산량 감축을 의미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식물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하거나 폐기물을 재활용한 재생원료의 공급을 늘리면 1차 폴리머 생산은 줄어들지만,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는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

현재는 바이오플라스틱 및 고품질 재생 원료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압력요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향후 시장 확대로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고 기술 발전으로 효율이 높아질 경우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플라스틱 사용량 감소를 위해서는 1차 폴리머 감축뿐 아니라 소비 감축을 위한 강력한 규제도 필요하다. 따라서 일회용품 및 일회용 포장재 등 불필요한 플라스틱 소비에 관한 규제도 필요하다.

1차 폴리머 생산에 대한 규제 강화는 국내 플라스틱 산업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모든 관련 기업들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1차 폴리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전통적인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엔 오히려 바이오플라스틱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산업을 전환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 국제 추세다. 이런 흐름을 보면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기업들에 안정적으로 고품질 재생원료를 공급할 수 있는 국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긍정적 압력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1차 폴리머 생산 규제를 국내 플라스틱 산업의 새로운 기회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가 간에 견해차가 크기 때문에 애초 목표대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이 이번 회의에서 나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지만 다소 미진하더라도 감량 목표가 반영된 협약이 부산에서 마무리가 되길 기대한다. 산유국과 중국 등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개최국인 한국 정부는 생산 및 소비 감축이 명시된 협약이 탄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