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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학원 레벨 테스트는 연출이다"…대치동 '박보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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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정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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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 잘하려면 체력을 바탕으로 기본기를 닦고 개인기를 길러야 해요. 공부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요? 체력도, 기본기도 없는데 개인기만 훈련하고 있지 않습니까? "

부모교육·학습법 전문가인 박재원 에듀니티랩 학습과학연구소장은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들은 공부 할 마음도 없고,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체력과 기본기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학교와 학원에선 문제 풀이에만 골몰하고 있다. 왜 그럴까?

박 소장은 “이런 현상의 중심에 객관식 시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한때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유명한 입시 컨설턴트였다. ‘선생님 말씀이 맞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 ‘박보살’로 불렸다. 그러다 10여 년 전 돌연 학원가를 떠났다. 그는 “아이들을 시험 기계로 만드는 데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시험 안 보면 공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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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 에듀니티랩 소장은 “남보다 시험 잘 보는 능력이야말로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대체할 능력”이라며 “문제 풀이 개인기로는 급변하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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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기도 전에 시험을 봐야 합니다. 유명 학원은 레벨 테스트를 보고 합격해야 다닐 수 있어요.

학원에선 레벨 테스트를 통해 아이의 수준을 확인하고 이에 맞춰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죠. 철저하게 실적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레벨 테스트입니다. 학원의 실적이 뭔가요? 이 학원에 다니면 성적이 오르고,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일부 학원은 레벨 테스트를 통해 실적 내기 쉬운 학생, 그러니까 원래 공부 잘하는 학생을 골라내는 겁니다. 그렇게 내는 실적은 학생 덕이지, 학원 덕이 아니에요. 원래 뛰어난 학생은 어느 학원에 다녀도 공부를 잘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특정 학원의 성공 사례로 이용되고 있는 거죠. 여기에 또 한 가지 비밀이 있어요. 학원의 레벨 테스트는 명분을 제공해줍니다.

Q : 명분요?

A : 공부하라고 아이를 채근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명분이에요. 막연히 ‘영어 공부해라’가 아니라 ‘무슨 학원 무슨 반에 들어가자’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렇게 학원에 가서 레벨 테스트를 보면 ‘이런 점이 부족하다’고 알려주겠죠? 다음 상위 레벨을 목표로 제시하고요. 이를 위해 숙제도 끊임없이 내주고, 끊임없이 시험을 볼 겁니다. 그러면 부모는 당연히 아이에게 숙제하라거나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라는 말을 더 할 수밖에 없고요.

Q : 그렇게라도 시켜서 공부하면 좋은 것 아닌가요?

A : 레벨 테스트나 시험이 공부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애초 경쟁을 즐기는 승부욕이 강한 아이, 공부가 생활습관으로 잘 잡힌 아이들이라면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은 전체의 5%도 채 안 될 겁니다. 대다수 아이들은 시험을 떠올리면 스트레스부터 받고 결과에 압박을 느끼죠. 그런 상태로 계속 시험과 공부에 노출되면 학습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 쌓이고,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사라져버립니다.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길에 들어서는 거죠.



✏️과당 경쟁, 남는 건 상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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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 소장은 “객관식의 줄 세우기 시험은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 학생들에게 상처만 남긴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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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 시험의 또 다른 얼굴은 줄 세우기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평가 방식은 1등과 2등을 가르는 데 가장 명료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그 결과 남는 건 경쟁과 그로 인한 상처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라고 상처를 안 받는 게 아니다. 모든 아이에게 상처가 남는다.

Q : 객관식 시험이 어떻게 경쟁을 부추긴다는 건가요?

A : 객관식 시험은 시험 범위도, 정답도 정해져 있어요. 모두가 같은 내용을 가지고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공부하죠. 심지어 시험도 다 같이 모여 한 번에 보잖아요. 수능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두 번 세 번 꼬아 낸 문제가 나오는 건 정해진 범위 안에서 기존에 없던 다른 문제를 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거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같은 내용을 더 많이 반복해서 공부한 재수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Q : 성적이 좋은 상위권 학생을 승자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A : 겉으로는 그래 보일 수 있지만, 이 학생들도 내상을 입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018년 서울대 입학본부에서 발간한 한 연구 문서에 서울대 공대 교수가 쓴 글이 있습니다. 서울대 공대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보이더래요. 공부를 꽤 한다는 학생들인데, 실패나 어려움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Q : 안전한 선택만 하려 한다는 걸까요?

A : 이른바 답이 없는 문제는 실패할 수 있으니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으려는 학생이 많다고 해요. 프로젝트 졸업 연구처럼 독자적 창의성을 발휘해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매우 어려워하고요. 답이 주어지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고, 남들보다 답을 잘 맞히는 능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받았던 아이들에게 남겨진 일종의 후유증입니다.

(계속)

특히 중위권 학생들이 유명 학원을 따라가면 더 큰 후유증을 남긴다고 합니다. "나도 상위권이 될 수 있다"는 헛된 기대에 빠지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고 하는데요. 박 보살이 밝힌 자녀와 부모에게 닥칠 비극은 무엇일까요?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8456

■ 수능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



수능 폐지 외치는 수능 창시자 “지금 수능, 공정하지 않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9000

“방향은 객관식 수능 축소” 서울대 교수의 2028 입시 전망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9856

수능 7등급으로 SKY 합격? 조국이 불지핀 '금수저 학종’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9270

현실은 주관식 탈 쓴 객관식…서울대 A+ 학생이 그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0125

“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동 비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6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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