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학생들 ‘탈옥’ 가능할까?…검정 끝난 ‘AI 교과서’ 대해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지난 9월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인공지능 교과서 수학 과목 시연 수업이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년 3월부터 일부 학년에 도입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검정 심사 결과가 발표됐다. 심사를 접수한 146종 가운데 12개 출판사에서 만든 76종의 영어·수학·정보 교과서가 검정에 최종적으로 통과됐다. 검정에 합격한 인공지능 교과서는 오는 2일부터 교사들에게 웹 전시본으로 공개되고, 일선 학교의 선정 절차를 거쳐 내년 1학기부터 교실에서 활용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9일 인공지능 교과서 도입을 두고 “지금은 디지털 기술을 지혜롭게 사용해 잠자는 교실을 깨울 때”라며 “교실과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교과서는 학습효과 불확실, 디지털 과몰입 우려 등의 이유로 여전히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이다. 인공지능 교과서가 도입되면 정말로 잠자던 교실이 깨어나고 ‘수포자’가 사라질까? 내년 도입을 앞둔 인공지능 교과서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보자.







검정 신청 심사본 중 절반만 통과





29일 관보를 보면,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초등 3∼4학년과 중·고교 1학년이 쓸 수학, 영어, 정보 교과목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검정 통과 도서 명단 76종이 실렸다. 검정을 신청한 심사본 총 146종 가운데 절반 가량만 통과했다. 합격한 인공지능 교과서의 실물은 12월2일부터 일선 학교에 전시된다. 각 학교는 전시본을 본 뒤 내년에 쓸 인공지능 교과서를 채택한다.





서책교과서와 다른 브랜드여도 괜찮아?





교육부는 서책형과 인공지능 교과서의 발행사가 달라도 수업에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교과서는 서책형 교과서에 맞춰 개발된 게 아니라 2022 개정교육과정에 맞게 개발한 거라, 서로 다른 브랜드여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공지능 교과서는 학생 (수준에) 맞춤해 흥미를 돋워주는 자료를 계속 제공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학생의 관심이 커져야 참여형 토론 수업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옥’접속…디지털 시민교육으로 해소한다고?





인공지능 교과서 도입과 관련해 학부모들의 가장 큰 우려는 디지털 과몰입이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에 도입된 ‘디벗’(학생들에게 제공된 태블릿 기기)만 해도, 당초 목적은 학습 활동의 디지털화를 통해 개별 맞춤형 교육이지만 학생들이 디벗을 이용해 유튜브 등을 과도하게 시청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인공지능 교과서는 ‘수업 집중모드’라는 게 있어서, 접속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사이트에 들어갈 수 없는 데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화면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공지능 교과서는 여러 보안장치가 이중삼중으로 작동한다”며 “그런데도 계속 ‘탈옥’ 등을 시도할 경우 디지털 시민교육을 통해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디지털 기기 사용에 관한 시민 소양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른들도 빠지기 쉬운 게 디지털 기기의 유혹인데 학생들이 디지털 시민교육이란 ‘공자님 말씀’만으로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고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교육부가 홍보 중인 인공지능 교과서 미리 보기 영상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잠자는 교실 깨우고, 수포자 사라질까?



이주호 부총리는 이날 브리핑에서 “수포자·영포자와 같이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이 학업에 흥미를 잃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을 통해 학생의 수준을 분석해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단계적으로 이해도를 높여가는 학습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학습할 의지를 잃은 학생에게 인공지능이 동기를 유발하고 정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공지능 교과서는 보조 수단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생 개인의 학습 상황별 교육과 피드백 등을 제공하기 위해 더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며 “정규 교원 확충을 통한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감축하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교과서 vs. 교육자료, 법적 지위 논쟁?





국회에선 인공지능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당은 인공지능 교과서를 법적 교과서로 보고 이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놨고, 야당은 소프트웨어에 교과서 지위를 부여하는 게 부적절하다며 교육자료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야당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국회 교육위원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도입 학년과 과목이 늘어날 때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법적 정비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인공지능 교과서가 법적 교과서 지위를 확보하면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교육자료가 될 경우에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이날 별도의 보도참고자료를 내 “인공지능 교과서는 교과서 지위로 개발 검증돼 교원 연수, 디지털 인프라 개선 등 많은 준비가 진행돼 법적 지위가 변동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우려되고, 교육자료는 초·중등교육법 상 무상·의무교육에 따른 지원 대상이 아니어서 학생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





2026년 이후 계획은?





교육부는 이날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 로드맵 조정안’을 통해 국어와 기술·가정 과목은 도입을 취소하고, 사회와 과학은 2026년 도입을 2027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국어와 기술·가정 도입 취소는 과목 특성상 인공지능 교과서에 적합하지 않다는 현장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 의견 들었을 때, 국어 교과는 자기표현이 많다는 특징이 있어 인공지능 교과서 특성상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는 데다, 학부모 쪽에서 문해력 문제 등을 제기한 부분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술·가정은 과목 우리 삶이나 생활과 관련된 만큼 실천적으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과목이라는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와 과학은 콘텐츠 개발 등에 시간을 좀 더 확보하겠단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회는 다양한 정보나 공공 데이터 기반이 필요한 과목, 과학은 탐구, 실험을 통해 학생들이 두루 경험을 해야 하는 과목”이라며 “영어나 수학처럼 위계성을 가지고 맞춤형 진단을 하는 학습과는 다른 형태의 맞춤 학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무리하게 도입을 서두르다 현장 반응에 놀라서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교육부 관계자는 “여러 과목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 수학처럼 위계가 있고 효과가 있는 과목을 중심으로 안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세상의 모든 책방, 한겨레에서 만나자 [세모책]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