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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동아시론/이각범]강직한 참모와 포용력 있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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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질문에 “무례하다” 지적한 정무수석

대통령과 참모가 어떤 관계 맺고 있나 의구심

껄끄러운 보고도 끝까지 듣는 게 대통령 자리

동아일보

이각범 KAIST 명예교수·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용산이 이상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그곳에서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고 사면초가에 몰린 대통령의 절박한 처지를 타개할 종합적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회의를 열면 주로 대통령이 말씀하시고, 참모들은 그저 대통령의 심기경호에 열중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있다. 그 많은 카더라 통신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대통령에게 할 말을 다 하는 참모가 많으면 대통령실의 경직된 분위기는 해소되고, 숙의(熟議)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통령정무수석이 기자회견 때 나온 질문을 두고 “무례하다”고 공개 지적한 일은 참모의 처신을 생각하게 한다. 하여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뒤바뀐 사례였고, 대통령이 참모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말이었다. 문재인 정부 신년 기자회견 때도 “대통령께서 현재의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한 방송사 여기자의 질문이 있었지만, 대통령 참모가 직접 지적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그 방송사가 재허가 논란 끝에 문을 닫기는 했지만, 기자의 질문이 직접 연관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인고(忍苦)는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대통령이 정상적인 국정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정치적 환경은 엄혹하다. 국회 의석 3분의 2에 육박하는 야당을 넘어 우리나라의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려면 대통령은 국정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 유신과 5공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할 때의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그러하였다.

겨울나무가 모든 잎을 벗어버리고 몸을 긴축한 채 엄동설한을 견디듯 대통령은 지금 개인적 호불호의 감정에서 벗어나 당정(黨政)을 최대한 포용하는 톨레랑스(관용)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이 장관이나 수석의 말을 경청하고 평상심으로 대화하여야만 참모들은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게 된다. 또 대통령실은 민심에 민감한 당에서 하는 건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장의 민심에 부합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당의 건의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참고 듣는 일, 또 불편한 건의와 조언을 끝까지 듣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걸 해내야 한다. 김영삼 정부 4년 차 때 문종수 당시 민정수석은 시중의 여론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보고했다. 한 번 그런 것이 아니라 매주 반복했고, 그것도 다른 수석들이 모두 듣는 자리에서 보고했다. 대통령으로선 껄끄러운 내용이 많았다. 나를 포함한 다른 수석들까지 민망할 정도였다. 아마도 조선조 시대 강단 있는 대사간(大司諫)이 그러하였을까. 보다 못한 원로 수석 한 분이 대통령에게 문 수석의 보고 태도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들었다. “내가 저런 일 하라고 저 사람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는 것이 대통령의 대답이었다. 김 대통령은 당시만 해도 대통령이자 국회 다수당의 총재였다. 그런 막강한 자리에 있었지만 주변에 언로를 여는 일의 중요성을 정확히 알고 국정을 지휘했다.

지금 국회의 소수당인 국민의힘은 당내 게시판 같은 문제로 서로를 적대시하며 싸울 여유가 없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불필요한 당내 소모전을 중지시켜야 한다. 현재 상황은 너무나 절박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대선 결과 등 올해 일어난 세계적 변화만으로 언제 큰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엄중한 처지에 있다. 법치를 정치로 덮는 다수당에 대하여 톨레랑스로 힘을 비축하며, 당정 화합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하여야 한다. 지금 협치의 대상은 특검과 탄핵을 외치는 야당이 아니라 집권당이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투항주의를 손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윈스턴 처칠 경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역사적 통찰력, 정직함, 설득의 노력을 들었다. 윤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위치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하여야 한다.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등 일부 이념에 결박된 정책으로 우리나라가 복합위기에 빠졌을 때 윤 대통령은 정권을 인수하였다. 하강하는 한국 경제를 멈춰 세우고, 새로운 상승을 위한 기반을 닦고, 기업 생산성을 높이며, 일자리를 만드는 과제를 맡고 있다. 세계의 주류 국가들이 경제와 안보는 하나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세계전략을 펼쳐 나가던 바로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안보시대의 국가전략을 시작하였다. 그걸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국민에게 현재 상황의 엄중함을 설명하여 ‘고통의 분담’을 호소함으로써 온 국민이 위기 극복에 동참하도록 하여야 한다. 역사는 여기서 후퇴할 수 없다.

이각범 KAIST 명예교수·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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