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돌 수백 알 붙인 기린이 '우뚝'…집집이 작품인 '돌 모자이크' 마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역 소·극·장 #21 남원 산촌마을]
주민이 직접 제작… 작품 200점 완성
독특한 형식에 ‘관광 명소’로 입소문
마을 초입 높이 9m 기린 조형물도 제작
주민들 십시일반 돈 모아 공원 조성도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한국일보

전북 남원시 수지면 산촌마을에서는 주민 양쌍복씨가 만든 돌 모자이크 벽화 200점을 볼 수 있다. 김혜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북 남원시는 고전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 장소인 광한루원, 지리산 둘레길 등으로 유명하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자연 정취와 역사·문화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아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기준 남원 인구는 7만5,000여 명이지만 매년 관광객 500만 명이 찾는다.

이런 남원시에 색다른 볼거리가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남원 중심가인 광한루원에서 북쪽으로 10㎞, 시청에서 13㎞ 떨어진 작은 마을 수지면 산촌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돌 모자이크 벽화’다. 말 그대로 담벼락에 각양각색의 돌멩이를 모자이크 형식으로 붙여 만든 그림이다. 수천 개의 돌멩이로 말·고양이·기린 같은 동물 또는 대나무 등을 형상화했다.

수지면 산촌마을은 27가구 60명이 살고 있으며 평균 연령은 70세다. 최고령 주민은 92세, 10대 이하는 2명에 불과하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이곳 산촌마을 주민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작고 평범한 이 산골마을이 외부에 알려진 계기는 2020년 한 주민의 재능 기부로 시작된 돌 모자이크 벽화다. 어느덧 작품 수만 200점에 달한다. 지난해 돌 모자이크 벽화를 보기 위해 이 마을에 다녀간 이만 1,500명이 넘었다. 아직 크게 내세울 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한 번 보고 가면 두 번, 세 번 찾는 방문객이 대다수라고 한다. 이 마을 오현준(78) 이장은 “전국 각지 사람이 우리 마을을 구경하러 찾아오니 조용했던 마을에 활기가 돌고 주민들의 표정도 환해졌다”며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주민들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벼락이 도화지로… 작가 겸 해설사 양쌍복씨

한국일보

돌 모자이크 벽화를 만드는 남원 산촌마을 주민 양쌍복씨가 자신이 만든 첫 작품 '용솔' 앞에 서 있다. 김혜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돌 모자이크 벽화는 주민 양쌍복(74)씨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양씨는 30년 넘는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한 뒤 자신이 나고 자란 산촌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조용히 노년을 보낼 생각이었던 그는 어느 날 한 이웃 주민으로부터 앞마당에 심을 소나무 한 그루를 선물로 받게 됐다.

양씨는 이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집 담벼락에 소나무 모양의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벽화로 이름을 알린 다른 지역처럼 처음에는 페인트로 그릴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랠 것 같아 돌을 재료 삼았다. 그림 한번 그려본 적 없었지만 새하얀 벽을 도화지 삼아 밑그림을 그렸다. 그 위에 접착제 역할을 할 시멘트를 발라 크기, 색, 질감 등을 따져 필요한 돌멩이들을 골라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작품 ‘용솔(龍松)’(2020)이 탄생했다.

양씨의 작품을 본 주민들은 반색했고 오 이장은 양씨에게 마을 담벼락에 작품을 추가로 제작해 달라고 청했다. 초기에 냇가나 산에서 돌을 주워 벽화를 만들던 양씨는 요즘은 사비로 돌을 구매하고 있다. 작품 하나당 들어가는 돌은 200개 안팎으로, 재료비만 25만 원가량 든다고 한다. 오 이장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마을 지원 공모 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확보하면 일부를 벽화 제작비에 보태기로 주민들과 뜻을 모았다”며 “2020년부터 3년간 2,200여만 원을 양씨에게 지원했다”고 말개했다. 지원금이 큰 도움이 되지만 양씨 사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 양씨는 수백 개의 돌을 붙여 높이 9m, 폭 4.5m에 달하는 기린 조형물을 마을 입구에 세웠다. 3개월 만에 완성한 이 조형물은 이제 마을의 상징 조형물이 됐다. ‘기순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양씨는 “조만간 똑같은 모양으로 ‘기돌이’도 만들 예정”이라며 “우리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증표”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일보

양쌍복씨가 돌 모자이크 벽화를 만드는 모습. 양쌍복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양씨는 관광객들이 오면 자신의 집을 시작으로 마을을 돌며 각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 작품마다 숨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509㎡ 규모의 양씨의 집에는 거북이 40마리와 매화, 기린, 펭귄 등 수십 개의 작품이 그려져 있다. 그는 화단 옆 긴 담벼락에 그려진 거북이와 치타 일곱 마리를 가리키며 “거북이가 ‘육지에서 가장 빠른 동물들은 내 앞으로 와라’라는 명령을 내리자 치타들이 거북이 앞으로 뛰어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양씨가 벽화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일은 필요한 모양의 돌을 찾는 일이다. 돌을 깎지 않고 원형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의 목과 다리는 가늘고 긴 돌이, 고양이의 귀는 세모 모양의 돌, 말과 소 등의 다리는 두껍고 네모난 돌이 필요하다. 그는 “돌 모양이나 표면에 그려진 무늬를 보고 무엇을 만들지 생각한다“며 “두 갈래 선이 그려진 돌은 고양이 입을, 검은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돌을 보고 동물의 눈동자를 생각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양씨의 활발한 작품 활동 덕분에 산촌마을은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 ‘제8회 생생마을만들기 콘테스트’ 경관·환경분야 최우수 마을로 선정돼 상금 5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퇴직하기 전에 봉사 활동을 많이 했었다”며 “남을 돕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우리 마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양씨가 3개월간 돌멩이 수백 개를 붙여 만든 높이 9m, 폭 4.5m의 기린 조형물이 마을 초입에 설치돼 있다. 김혜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을 살리기에 똘똘 뭉친 주민 60명


양씨뿐만 아니라 산촌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마을 살리기’에 진심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지역마다 유입 인구를 늘리기 쉽지 않은 만큼 산촌인들은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이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지만 오 이장을 필두로 마을을 살리는 일에 합심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1,487㎡ 규모의 공원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조성됐다. 땅 주인이었던 주민 임순덕(76)씨로부터 5,000만 원에 매입하기로 했는데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한 달 만에 6,000만 원, 2년 만에 1억 원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9일 공원 준공식 때에는 유명 트로트 가수 김태연을 섭외해 축하 파티도 열었다.

오 이장은 “주민들이 가볍게 운동도 할 수 있고, 방문객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공간”이라며 “주민들과 우리 마을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뜻을 모은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산촌마을에 있는 '항아리박물관'.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주민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온 항아리를 모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김혜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민 협력의 유무형의 성과는 마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산촌마을에서는 매주 월요일에만 쓰레기봉투를 대문 앞에 내놓는 게 규칙이다. 농기계는 집 앞에 둘 수 없고 따로 마련된 보관소에 둬야 한다. 오 이장은 “우리 마을의 첫 인상이 된다고 생각해 청결하게 마을을 가꾸는 게 가장 우선”이라며 “‘마을이 깨끗하다’고 감탄하고 가는 방문객들이 많다”고 했다. 마을에는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지름 1m 안팎의 항아리 20개가 줄지어 있는 ‘항아리 박물관’이다. 주민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온 오래된 항아리들로, 김소월의 '진달래꽃' 같은 명시나 마을 약사(略史) 등 마을관련 정보가 새겨져 있다. 주민들은 앞으로 방문객을 위한 카페와 직접 키운 농산물 판매 장터도 조성할 계획이다.
한국일보

지난해 KBS 시사교양프로그램 '동네 한 바퀴'에 남원 산촌마을이 소개돼 주민들이 진행자 이만기(오른쪽에서 일곱 번째)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현준 이장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남원시와 한국도로공사가 협약을 맺고 순천~완주 고속도로 춘향휴게소(완주방향)를 개방형 휴게소로 전환 중이다. 개방형 휴게소는 편의시설이 부족한 지역 주민들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공유할 수 있도록 휴게소 뒤편에 진입로를 내는 방식으로 조성된다. 산촌마을 주민들은 내년부터 7~10분 정도 걸어서 휴게소 내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고속도로 이용객들도 산촌마을에 내려와 모자이크 벽화를 구경하거나 머물다 갈 수 있다. 오 이장은 “사람이 있어야 마을이 산다”라며 “우리 마을 주민들이 똘똘 뭉치는 이유는 내 고향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촌마을 이야기


산촌마을은 남원시 수지면 소재지로부터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산중(山中) 마을이다. 고려 후기 때부터 최씨를 비롯해 양씨·박씨·임씨 등 여러 성씨를 가진 주민이 터를 잡고 살았다. 세 개 산봉우리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본래 ‘삼태동(三台洞)’ 또는 ‘산대골’이라 불렸다. 1960년대 중반까지 ‘고려장(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 산 채로 버려뒀다 죽은 뒤 장사 지내는 일)’과 연관된 무덤 13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개간·풍수해 등으로 훼손돼 1기만 남아 있다. 당시 무덤엔 그릇과 수저 등이 발견돼 어린이들이 장난감으로 가져다 놀았다고 한다. 산촌마을은 주민 간 단합이 잘돼 1970년대엔 남원 관내에서 새마을 사업을 가장 많이 한 마을로 꼽혔다. 수지천을 가로지르는 80m 길이 다리도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주요 소득은 논밭에서 나온다. 1970년대는 잠업(누에를 치는 사업)이 활발했고, 1980~1990년대는 양파, 2000년대 들어선 청양고추를 주로 재배하고 있다. 지금은 고령화로 생산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남원=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