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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헤즈볼라와 휴전했지만 폭격의 공포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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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의 여기는 이스라엘]

최북단 도시 나하리야 르포

조선일보

지난 28일 이스라엘 최북단 도시 나하리야의 바닷가. 모래사장 뒤쪽으로 레바논 국경인 회색 장벽이 보인다. /김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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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휴전이 발효된 지 이틀째인 지난 28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40분가량 달려 북부 철로의 종점이자 레바논과의 접경지대인 나하리야에 도착했다.

이곳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 7만7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레바논 국경과 불과 9㎞ 떨어져 있는 최북단 지역이다. 처음 텔아비브역에서 기차를 탔을 때만 해도 가득했던 일반 승객들은 대부분 중간 지점인 하이파에서 내렸고, 나하리야역에 가까워지니 기차 칸엔 기자를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어깨에 장총을 멘 이스라엘 군인들이었다. 접경 지대에 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전쟁 발발 416일 만에 휴전이 발효됐다. 그 후 약 36시간이 지났지만 이날 나하리야 도심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양측에서 서로 휴전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등 위협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날 이스라엘은 휴전 이후 처음으로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의 중거리 로켓 보관 시설을 공습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국경 마을로 돌아가는 레바논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에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합의에서 벗어난 모든 행위에 대해서 총성으로 답할 것”이라며 공격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휴전 협의의 완전한 이행은 아직 불확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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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에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자신들이 운영하던 가게 건물이 무너져내린 것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젊은 부부의 모습. 이스라엘과 레바논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는 지난 26일 임시 휴전을 맺었지만, 주민들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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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리야 주민들은 전쟁이 언제 재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여전히 떨고 있었다. 나하리야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지중해 바닷가. 바다 위엔 군함 두 척이 순찰 중이었다. 바다 너머로 선명히 보이는 언덕 위 레바논 국경 장벽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인근 골목 주택가의 놀이터는 땅이 움푹 꺼진 상태였다. 입구엔 접근 금지 울타리가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 한 남성이 이곳에서 요격당해 추락하는 미사일 파편에 맞아 숨졌다고 했다.

이스라엘 영공의 제1 방어선인 나하리야는 지난해 전쟁이 터진 이후 연일 헤즈볼라의 맹폭에 시달렸다. 특히 지난 9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 작전을 시작한 이후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론과 로켓이 이곳으로 날아들었다. 나하리야보다 작은 소도시나 키부츠(집단 농장)에 머물던 이들은 모두 피란을 떠났지만, 나하리야는 인구가 많은 도시인 만큼 피란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고 주민 대부분이 도시에 남았다.

이곳에서 마주친 주민들 상당수는 휴전 협상 타결 소식에도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변가 아파트에서 아내 다리아 탈(69)씨와 둘이 살고 있다는 라미 스메트(72)씨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휴전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 기간 하루에도 몇 번씩 집 창문 밖으로 헤즈볼라의 미사일이 굉음을 내며 요격되는 것을 목격했고, 로켓 파편이 집 앞 바다에 떨어지는 경우도 여러 차례 봤다고 했다. 특히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2주 동안 로켓 수백 발이 도시를 겨냥하면서 파편에 주민 4명이 사망했다며 “공습경보가 멎었다고 해서 어떻게 하루아침에 안심할 수 있겠냐”고 했다. 과거 레바논 전쟁에 세 차례(1978년·1982년·2006년) 참전했다는 스메트씨는 “중요한 것은 휴전이 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게 얼마냐 지속될 수 있냐는 것”이라며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자지구에서의 상황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갈등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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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해변가 햄버거 가게에서 만난 힐리 파르투크(22)씨도 “휴전이 됐다고 해도 친척들이 금방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쟁이 터진 이후 나하리야 근처에 살던 파르투크씨의 친척들은 모두 피란을 떠난 상태이고, 현재 이곳엔 그와 그의 부모만 남았다고 했다. 그는 “(전쟁이 끝났다는) 완전한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기 힘들 것이고, 그만큼 사람들이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8일 헤즈볼라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이스라엘 북부에서만 6만여 명의 주민들이 집을 떠나야 했다. 하마스가 국경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공격한 것과 유사한 지상 공격이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휴전이 성사된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이들은 아직 거의 없다. 피란민 상당수가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만큼, 온전히 안전에 대한 확신 없인 돌아올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나하리야의 일부 주민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접경지대에 사는 이스라엘 북부 주민의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닌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전쟁을 벌였고, 이젠 휴전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벤(33)씨는 “이번 전쟁에 대한 모든 결정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비리 혐의로 기소된) 네타냐후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것”이라며 “휴전이 이제야 결정된 것도 결국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스라엘 접경 지대 피란민들이 휴전 이후에도 안전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귀환을 미루는 것과 달리 레바논 주민들은 휴전이 발효된 직후부터 남부 지역으로 이미 귀향(歸鄕)을 시작했다. 난민의 수가 120만명으로 수도 베이루트가 포화 상태에 이를 정도로 많을 뿐더러, 레바논 정부에서도 주민 복귀를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정규군은 수도 베이루트에서 남부로 향하는 도로에 임시 검문소를 설치해 불발탄을 제거하고 파괴된 도로를 재건하는 등 피란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NYT는 “전쟁으로 레바논 인구의 4분의 1인 100만명이 고향을 떠나 대피했는데, 휴전이 성사된 이후 수천 명이 남부 지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레바논 북동부 바알베크헤르멜주(州)의 바치르 코드르 주지사는 소셜미디어에 “피란민의 절반 정도가 돌아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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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리야=김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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