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씨 인터뷰
지난 11월 26일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의 아내 이지현씨가 자택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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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검정고무신> 문제가 아마 다 해결된 줄 아실 거예요. 재판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보도됐으니까요.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고 이우영 작가의 아내 이지현씨)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 측과 분쟁을 벌이다 세상을 떠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후반 서울 마포구에 사는 기영이네 대가족의 따뜻한 일상을 담은 만화다. 인기에 힘입어 여러 차례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등 ‘국민 만화’로 꼽혀왔다.
이 작가를 떠나보낸 뒤 20개월이 지나고, 그의 아내 이지현씨가 어렵게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시간 그는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분투해왔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떠난 해 갓 스무 살이 됐고, 막내딸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이씨는 “지금 내가 정신을 차려야만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면서 “그간에는 뒤로 물러나 있었지만, 앞으로는 직접 나서 남편이 겪은 일을 설명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곱씹어가며 법적 분쟁을 이어가는 일은, 그에겐 일상 회복을 스스로 뒤로 미루는 힘겨운 여정이다. 지난 11월 26일 인천 강화도 자택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아내 이씨로부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검정고무신> 분쟁에 대해 들었다.
“남편이 죽은 뒤 불공정 계약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작가를 만났어요. 이 소송은 저희만의 소송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출판사가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작가가 어떻게 그 많은 법률용어를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17년 전의 계약서
이 작가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해 3월 11일. 당시 그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검정고무신> 저작권 분쟁은 사망 6개월 뒤 일단락됐다. 4년여에 걸친 민사소송 1심의 결과는 이 작가 측의 ‘일부 승소’였다. 창작자를 옥죄는 불공정 계약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던 시기였다. 이 판결은 ‘사필귀정’ 서사로 대중에 전달됐다. 그러나 판결 내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재판부는 2007년 맺은 계약이 “해지됐다”고 보면서도 2018년 11월까지는 효력을 인정했다. 애초 계약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이 작가 유족, 계약 해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장모 형설출판사 대표 양측이 모두 불복해 항소심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가와 형설출판사(이하 형설) 장 대표 간의 얽히고설킨 갈등은 2007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판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 캐릭터 사업을 두루 하고 있었던 형설과 <검정고무신>의 세 작가(글 이영일, 그림 이우영·이우진,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는 형이 군대에 간 동안 그림을 대신 그렸다)는 2007년 9월, 하나의 계약서를 쓰게 된다. 이 작가가 “캐릭터 사업을 위한 출판사 측의 계획서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던”(이지현씨) 이 계약서의 문구는 이랬다. “<검정고무신> 원저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장 대표가 갖고 “수익은 협의해 분배한다.”
이듬해 장 대표는 <검정고무신>의 기영이·기철이·땡구 등 캐릭터 9종의 ‘공동저작자’로도 이름을 올린다. 3년 뒤 이영일 작가가 자신의 지분 일부를 장 대표에게 추가 양도해 저작권의 최종 지분은 장 대표 53%, 이영일 10%, 이우영 27%, 이우진 10%가 된다.
계약서 작성 3년 뒤, 세 작가는 장 대표와 ‘양도각서’ 또한 쓰게 된다. 이때의 양도각서 내용은 두 갈래다. ①타 출판사 등의 저작권 침해로 인한 형사고소 및 합의 권한을 장 대표에게 위임한다는 내용과 ② <검정고무신> 작품활동 관련 업무는 장 대표를 통해 진행하고, 개인적 계약은 3배 위약금 지불한다는 내용이다. 이우영 작가는 이 각서를 그중 첫 갈래, “타 출판사의 저작권 침해에 대응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지현씨)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즉 2007~2010년 이우영 작가는 계약서와 양도 각서상 문구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사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지현씨는 “계약서와 각서에 대해 법정에서 상대(형설출판사와 장 대표)가 내놓은 해석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너무 달랐다”면서 “계약 등이 이뤄진 15년 전은 작가들이 출판사를 믿고 자신의 도장을 맡기던 시대였다. 남편 역시 당시 장 대표의 설명을 믿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수익 배분율 0.51%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쌓여갔다. 2006년 원저작인 만화 <검정고무신> 연재(소년챔프·대원씨아이)가 끝난 뒤 이우영 작가는 학습만화를 주로 그리며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 대개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기영이·기철이·땡구 등을 등장시킨 만화들이었다. 그는 이때 이미 세 아이를 둔 아빠였다. 아내가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낮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아내가 퇴근해서야 이 작가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지현씨는 말한다. “학습만화를 그리든 3만원짜리 강의를 하든, 먹고살기 위해 항상 성실하게 뭔가를 하는 사람이었어요. 누군가 남편에게 그렇게 말한 게 기억나요. ‘너는 작가 같지 않고 공무원 같아.’”
그렇게 살아가던 2015년의 어느 날, 이 작가는 KBS에서 방영된 <검정고무신> TV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됐다. 2000~2005년 방영된 <검정고무신> 1~3기에 이은 4기 애니메이션이었다. 이지현씨는 “남편은 4기 애니메이션 계약에서 배제됐다”면서 “계약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떡하니 ‘TV 애니메이션이 나왔어요, 홍보해주세요’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문제의 TV 애니메이션 계약과 관련해 판결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원고(장 대표)가 4기 애니메이션 계약 과정에서 이우영·이우진과 협의 등을 거쳤다고 볼 만한 자료조차 없다. 즉 4기 애니메이션 수익분배는 원고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TV 애니메이션(4기) 수익의 분배율은 장 대표가 55.17%, 이우영 작가가 0.51%, 이우진 작가가 0.19%, 이영일 작가가 0.19%였다. 장 대표의 배분율이 이우영 작가의 100배가 넘는다.
갑자기 접하게 된 건 TV 애니메이션만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했던 극장판 만화영화가 나오는가 하면 패스트푸드점 피규어가 출시되고 마트 상품과 빙수, 치킨 등에 <검정고무신> 캐릭터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지현씨는 “정산서 한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남편의 통장엔 뭘 팔아서 나온 수익인지 설명도 없이 5만원, 2만5000원 등이 찍힐 뿐이었다”면서 “우리가 세어본 사업만 77개다. 실제 얼마나 진행됐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본격적인 분쟁은 2018년 시작됐다. 이우영 작가는 불투명한 정산 등을 이유로 형설 측에 ‘2008년 계약’의 해지를 요구했다. 형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듬해 이우영·이우진 작가를 상대로 2억8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두 작가가 그간 출판한 학습만화 등이 ‘2008년 계약’과 ‘2010년 양도각서’를 위반했고, 공동저작권자인 장 대표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 했는데…”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이용한 책은 작가들 합의하에 각자 자유롭게 출판하고 있었어요. 그간의 출판을 가지고 소송을 걸었다길래 처음에는 웃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요.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닌 거예요.”
소송이 진행될수록 남편의 성격은 변해갔다. 그는 세 아이의 아빠로서, 국민 만화로 사랑받았던 <검정고무신>의 원저작자로서 성실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을 스스로 부정하려 들었다. “내가 미쳤었나 봐, 나 돌았었나 봐.” 이우영 작가는 매일 자책했다고 한다.
남편 사망 뒤에야 끝난 1심 소송. 아내는 남편 없이 법정에 앉아 선고를 들었다. 68페이지 분량의 판결중 그는 딱 두 가지를 알아들었다. “계약 해지. 그런데 우리가 돈을 주래.” 1심 재판부는 계약이 불공정해 원천 무효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장 대표의 부당한 행위를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신뢰관계가 파탄 났으니, 이우영 작가가 해지 의사를 밝힌 2018년 11월부터(양도각서는 2019년 10월부터) 계약은 깨졌다고 봤다.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그간 출간한 학습만화가 <검정고무신> 캐릭터 공동저작권자인 장 대표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형설 측 주장 역시 일부 받아들여졌다. 손해배상액은 ‘계약서·각서 위반’과 ‘공동저작권자(장 대표)의 저작권 침해’를 합해 약 7500만원으로 책정됐다. 애초 장 대표가 주장한 배상액(2억8000만원)보다 훨씬 적은 액수지만, 어쨌든 손해배상은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검정고무신>의 원저작자가 그 캐릭터를 썼다는 이유로 출판사에 배상을 하라니요”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사기당해 사인했던 계약과 양도각서가 무효임을 반드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반면 형설 측은 계약서와 양도각서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입장이고, 애초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1심 재판부가 이우영 작가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놨다고 보기는 힘들다. ‘계약 해지’ 등을 인정하면서 형설이 향후 <검정고무신> 캐릭터 사업을 하지 못 하도록 금지한 점을 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재판부가 소송비용의 80~90%를 원고(장 대표 측)가 부담하도록 했다”면서 “재판부가 원고들에게 소송비용을 더 크게 부담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사안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업 규모를 작가에게 숨겼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사실상 작가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형설은 사업 내역이 필요한 만큼 공유됐다는 입장이다). “원고(장 대표)가 (작가들에게) 사업 내용을 알리는 밴드를 개설하기는 했으나 여기에 올린 수익사업 내용은 실제 진행된 사업 중 극히 일부로 보일 뿐이다.” 다만 정산액이 누락됐는지 여부와 그 규모는 별도로 따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잦은 지급 지연, 작가에게 불리한 수익 배분율, 사업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원고는 협의를 통해 수익을 적절히 분배할 의무를 해태했다”고 봤다.
이우영 작가 측을 대리하고 있는 황지원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1심 재판이 더 지연될 것을 우려해 수익 분배를 청구하지 않았으나, 2심에서는 분배받지 못한 수익을 돌려달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끝까지 간다”
인터뷰 말미에 이지현씨는 남편의 장례식장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가 미안해하며 빈소에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사모님, 이 재판, 계속하실 건가요”. 이씨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네. 당연히 해야죠.” 시간이 흐를수록 이씨의 결심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남편이 죽은 뒤 불공정 계약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작가를 만났어요. 이 소송은 저희만의 소송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출판사가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작가가 어떻게 그 많은 법률용어를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황지원 변호사는 “작가들이 출판사엔 ‘을’일 수밖에 없는 점, 법률용어 등을 잘 모르는 점을 이용한 불공정 계약이 출판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소송은 그러한 관행과 관련한 중요한 판례가 될 수 있다. 많은 작가가 이 판결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재판부에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지현씨는 출판사를 상대로 별도의 형사 고소(저작권법 위반)도 했다. 아내로서의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제가 남편과 함께 쓴 학습만화가 한 권 있어요. 형설출판사가 이 책의 그림과 본문 70% 정도 베껴서 출판했더군요.” 저자 이름(글 이지현·그림 이우영)과 인사말까지도 같은 형설출판사의 책을 보고 그는 결심했다고 한다. “이런 출판사라는 걸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글까지 베낀 거잖아요. 저는 그 출판사와 아무런 계약을 한 적이 없는데도요.” 이에 대해 형설 측은 “대표 저자로서 이우영 작가가 사인한 해당 도서의 출판계약서가 별도로 있다”는 입장이다.
<검정고무신> 분쟁은 과연 불공정 계약이 만연한 출판업계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까. 항소심 선고는 2025년 1월 16일에 예정돼 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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