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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전 세계 팬들 경악한 '핵주먹'의 몰락 순간…이게 끝이 아니었다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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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포츠+] 스스로 무너진 전설의 '핵주먹' 타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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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포츠사를 수놓았던 명승부와 사건, 인물, 교훈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별별스포츠+', 역사와 정치마저 아우르는 맥락 있는 스포츠 이야기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6일 프로복싱 전(前) 세계 헤비급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58세)이 자신보다 무려 31살이나 어린 제이크 폴(27세)과 대결을 펼쳐 큰 화제가 됐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경기는 기대 이하의 졸전이었습니다. 1980년대 세계 복싱계를 주름잡았던 전설 타이슨이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며 3대 0(72-80 73-79 73-79)으로 판정패했습니다.

하지만 타이슨은 오랜만에 큰돈(2천만 달러)을 거머쥐며 두둑한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타이슨이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링에 오르면서 굴곡 많았던 그의 복싱 인생이 다시 소환됐습니다.

등장도 드라마, 몰락도 드라마



타이슨은 정말 무시무시했던 복서입니다. 그는 1986년 11월, 20살의 나이에 당시 WBC 헤비급 챔피언 트레버 버빅에게 도전해 2라운드 KO승을 거두고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이었습니다. 이듬해 3월 제임스 스미스를 판정으로 꺾고 WBA, 같은 해 8월 토니 터커를 판정으로 누르고 IBF 타이틀까지 석권하며 3대 기구 헤비급 통합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명실상부한 지구촌 최강 주먹이 된 것입니다. 세계 복싱계는 '제2의 조지 포먼'이 나타났다면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했습니다. 1990년 2월 10일까지는 그랬습니다.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는 스포츠 역사상 최대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를 꺾을 적수가 없을 거라고 봤을 때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무명의 약체 선수에게 무기력하게 KO패를 당한 것입니다. '핵주먹' 타이슨이 쓰러지는 모습에 전 세계 복싱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때까지 타이슨은 37전 전승에 33KO로 KO율이 90%에 육박하고 있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33KO승 가운데 25번이 3라운드 이내에 거둔 것이고 1라운드 KO승만 무려 17차례나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타이슨에 비해 도전자였던 제임스 버스터 더글라스는 무명에다 약체로 평가됐습니다.

더글라스의 전적은 29승 1무 4패 19KO. 1987년 5월 IBF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토니 터커에게 10라운드 TKO패를 당했는데 터커는 3개월 후 타이슨과 통합 타이틀전에서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했습니다. 당시 도박사들은 무려 42대 1로 타이슨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상했습니다. 더글라스가 몇 라운드나 버틸 수 있을지가 관심이었습니다. 팬들의 관심은 사실 이 경기보다 타이슨의 다음 경기에 쏠렸습니다. 타이슨이 이 경기 후 당시 떠오르는 강자 에반더 홀리필드(당시 23전 전승 19KO)와 빅매치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42대 1로 타이슨 승리 예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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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이 울리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타이슨의 키는 178cm. 헤비급 선수로는 작은 키였습니다. 리치도 71인치(180cm)로 짧았습니다. 대조적으로 더글라스의 키는 192cm, 리치는 83인치(211cm)로 타이슨보다 키가 훨씬 크고 리치가 길었습니다.

긴 팔을 이용한 더글라스의 왼손 잽에 타이슨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고전했습니다. 더글라스가 4라운드에 왼손 잽을 연이어 성공시키자 타이슨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러자 중계진도 "우리가 본 더글라스의 경기 중에 최고로 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타이슨은 큰 것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반전하고자 했지만 정확성이 떨어지고 빗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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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라운드는 더글라스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전개됐습니다. 중계진은 더글라스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붙고 있다고 했고, 타이슨이 이렇게 많이 맞는 거는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5라운드가 끝나고 타이슨의 왼쪽 눈이 부어올랐습니다. 타이슨 측 코너에서는 라텍스 장갑에 얼음물을 채워서 타이슨의 부어오른 눈에 갖다 댔습니다. 타이슨이 당연히 이길 줄 알고 아이스팩조차 준비를 안 해서 급한 대로 라텍스 장갑을 활용한 것입니다.

전혀 예상외의 경기에 관중석도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라스의 닉네임 "버스터"를 연호했습니다. 타이슨도 당황하고 초조해진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큰 것 한 방을 노리고 연이어 큰 주먹을 날렸지만 계속 빗나갔습니다. 6라운드 끝나고 타이슨의 왼쪽 눈이 더 부어올라 감긴 모습을 보였습니다. 중계진은 자기들이 보기에 타이슨이 이긴 라운드는 하나도 없다며, 더글라스가 점수 면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느려도 너무 느렸던 주심의 카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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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에 몰렸던 타이슨은 8라운드에서 회심의 한 방을 날렸습니다. 강력한 오른손 어퍼컷이 더글라스의 턱에 적중하자 더글라스는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습니다. 큰 충격을 받아 카운트 10 안에 일어나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때 멕시코인 주심 옥타비오 메이란(Octavio Meyran)의 카운트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카운트를 너무 천천히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10초 정도에 카운트를 마쳐야 하는데 이 주심은 카운트 9까지 13초나 걸렸습니다. 더글라스는 카운트 9에 겨우 일어났지만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공이 살렸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8라운드 종료 공이 울리는 행운이 따른 것입니다.

더글라스는 천금 같은 1분 휴식 시간 동안에 충격에서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9라운드 시작하자마자 전광석화 같은 연타로 타이슨을 몰아붙였습니다. 이날 가장 큰 펀치를 맞은 타이슨은 그로기 상태에 몰렸고, 그의 왼쪽 눈은 이제 완전히 감겼습니다. 타이슨은 허우적거리면서 간신히 버티는 데 급급했습니다.

더글라스, 세계 복싱사 최대 이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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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운명의 10라운드가 시작됐습니다. 1분 22초가 지났을 때 더글라스는 강력한 오른손 어퍼컷을 턱에 적중시킨 뒤 좌우 연타로 핵주먹 타이슨을 쓰러뜨렸습니다. 타이슨 생애 첫 다운. 전 세계 복싱 팬들은 이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타이슨은 마우스피스를 주워 물고 겨우 일어났지만 주심은 카운트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중계 해설자는 연신 "unbelievable(믿을 수 없습니다)"을 외쳤습니다. 이렇게 타이슨은 생애 첫 다운과 38경기 만의 첫 패배를 맛봤습니다. 기적을 일으킨 더글라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더글라스는 이 경기 23일 전 모친상을 당했는데 그 슬픔을 딛고 깜짝 헤비급 통합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취소한 채 보디가드들에 둘러싸여 도쿄돔을 떠났던 타이슨은 6시간 만에 다시 나타나 기자회견에 참석했는데 더글라스의 주먹에 부어올라 거의 감긴 왼쪽 눈을 가리기 위해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습니다. 타이슨은 "타이틀을 잃는 것은 좋다. 하지만 부정한 방법에 의해 잃고 싶지는 않다"며 "나는 8라운드에 이미 KO승을 거뒀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심의 느린 카운트에 큰 불만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혼과 성폭행, 그리고 '핵이빨' 사건



승리할 확률 99%이었던 타이슨이 처참하게 무너진 이유는 바로 그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이 경기를 앞두고 타이슨은 사생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아내 로빈 기븐스(Robin Givens)와 불화, 폭행 그리고 이혼 소송을 겪었습니다. 트레이너 케빈 루니와도 불화를 겪다 해고했습니다. 한마디로 훈련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었는데 이를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타이슨은 이후 재기를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91년 7월 미인대회 참가자였던 데지레 워싱턴(당시 18세) 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992년 3월 26일 유죄를 선고받고 인디애나폴리스 교도소에서 6년 동안의 수감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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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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