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1 (일)

검사정권 2년반 만에 알게 된 것...법돌이는 정치꾼 못 이긴다[노원명 에세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 ‘엇갈린 표정’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윈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국회로 돌아오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따로국밥의 국과 밥처럼 따로 된지 오래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아이덴티티에 속하는 인간형이다. 서울법대를 나와 검사 생활을 오래한 법돌이. 그들은 정치인이 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세상을 검사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한 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판결을 며칠 앞두고 유죄, 심지어 법정구속을 시사하는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당원게시판 논란에는 함구하면서 남의 재판에 훈수둔 것이다. ‘이재명 유죄’가 얼마나 절실했으면. 한대표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재판은 무죄가 났고 당게 논란은 더 뜨거워졌다.

한 대표가 이재명이란 닭을 쫓다 지붕 쳐다보는 것은 지난해 9월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해는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법무부장관으로서 법률싸움에서 진 책임이 있다. 이번에는 서초동에 올인하다 여권 쇄신 기회를 놓쳐버린 정치적 책임이 있다. 더 큰 패배는 따로 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 무대에 첫 등판했던 한 대표는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웠다가 ‘검사정권 심판론’에 되치기당했다. 가만보니 그는 이재명을 상대로 한번도 못 이기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딱 한번 이재명에 이겼다. 결정적인 승리였지만 그 후로 이재명 대표의 포위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총선 대패전에는 이 대표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형사범을 어떻게 만나나’는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총선에 지고서야 상황에 떠밀려 만났다. 원수끼리 만나도 친해 보이는 것이 정치인의 회동인데 이 대표를 대하는 윤 대통령은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검사가 거북한 민원인을 만났을때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이 대표를 상대로 ‘어떻게 전과4범 따위가’하는 경멸적 분위기를 풍기고는 한다. 둘다 검사 출신이라 그럴 것이다. 검사는 사람을 유죄와 무죄로 나누고 유죄는 감방에 보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정치에선 유·무죄의 경계가 흐릿할 뿐더러 그걸 결정하는게 법전이 아니라 선거이고 여론이다. 전과 4범 야당 대표를 끝장내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법원의 유죄 판결이 아니라 다수 국민이 ‘이재명은 문제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명분과 비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이고 보통 그걸 정치라고 한다. 검사출신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들어선 이후로 잘 안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정치가 안되고 있다. 윤, 한 두 사람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전과 4범이 상대하기에도 충분한 약체 여권을 만든 것이다. ‘너나 잘하세요’ 같은 소리나 듣고 있다.

짐작컨대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할 것같다. 다른 재판은 차치하고 1심에서 징역형이 나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만큼은 대선전에 확정 유죄판결이 나올 걸로 기대하지 않겠나. 그건 검사적 사고이고 정치적 사고를 하는 이재명 대표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는 ‘상황은 유동하는 것이고 상황을 만드는 것은 사람과 운’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트럼프도 그런 유형에 속한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기자 그를 기소했던 미국 검찰과 특검은 깨끗하게 수건을 던졌다. 위증교사 무죄가 나온날 이 대표 본인은 7부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본다. 아닌가? 8부 능선인가.

검사는 보기 좋은 이력이지만 정치라는 링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정치꾼(politician)을 이기는 것은 정치가(statesman)이지 검사했다고 감옥 보낼수 있는건 아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정치가가 되기 위한 수련없이 단번에 너무 큰 정치배역을 떠맡은게 아닐까. 그들은 검사가 피고인 대하듯 이재명 대표를 깔보았는데 현실은 산전수전 정치꾼을 상대로 오만 떠는 법돌이 초보 정치인이다. 그 초보들이 지금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 딱하게도. 공동운명체인 줄도 모르고.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