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락-메독 Chateau Clarke 수출매니저 Amelie Duboc.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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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우박, 폭우, 곰팡이. 와인 산지에서 이보다 더 치명적인 자연재해는 없을 겁니다. 특히 포도가 싹을 띄우는 3~4월에 서리가 내려서 얼어버리면 그해 포도 농사는 그냥 끝나버리고 맙니다. 2013년과 2017년 보르도는 이런 서리 피해로 ‘최악의 빈티지’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습니다. 2021년도 비슷합니다. 팬데믹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고난속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서리와 폭우의 자연재해가 엄습하고 맙니다. 하지만 절망속에서도 꽃은 피는 법. 수확을 앞두고 고온 건조한 ‘인디언 서머’가 이어지면서 포도 재배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렇다면 보르도 그랑크뤼 2021 빈티지는 3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떤 와인으로 변신했을까요.
보르도 와인 산지. 와인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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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도전한 2021년
2021년 봄 프랑스 와인 생산자들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3월 중순 이후 한낮 기온이 섭씨 26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이른 더위가 찾아오더니 갑자기 4월 5~8일에 섭씨 영하 6~7도까지 떨어지는 한파로 서리가 덮쳐 그만 심각한 냉해를 당하고 맙니다. 보르도는 물론 론, 부르고뉴, 보졸레가 상황이 비슷해 포도재배 농가의 80%가 피해를 봅니다. 보르도에서도 특히 메독, 생테밀리옹, 포므롤, 그라브, 페삭-레오낭 지역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끝이 아닙니다. 개화 뒤 6월말부터 7월초까지 폭우가 내리면서 흰곰팡이(mildew), 회색곰팡이(grey rot)가 만연하게 됩니다. 특히 메를로 품종의 피해가 컸습니다.
서리 피해 방지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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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피해 포도나무 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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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프랑스 농림부에 따르면 부르고뉴는 생산량의 50%, 론 밸리는 80~90%, 보르도는 5~10%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됩니다. 2021년 와인 생산량이 전년보다 24∼30% 감소한 3260만∼3560만헥토리터(1헥토리터는 100리터=약 133병)로 예상했고 서리와 폭우 피해로 수확량이 크게 줄었던 1977년과 비슷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스위트 와인 산지인 소테른과 바르삭은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정도로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이에 일부 와이너리들이 생산을 포기하면서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27개 와이너리중 14곳만 2021빈티지 그랑크뤼 스위트 와인을 만들게 됩니다.
UGCB Ronan Laborde 회장.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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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속에 꽃핀 ‘쿨 클래식’
그렇다면 2021 빈티지의 품질은 어떨까요. 보르도 그랑크뤼클라세 2021 빈티지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보르도그랑크뤼클라세연합(UGCB) 로난 라보르드(Ronan Laborde) 회장을 만나 생산자들을 애태우게 만들었던 2021 빈티지의 뒷얘기를 들어봅니다.
“2021년은 봄의 서리 피해를 시작으로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져 포도 생산자들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애태우게 만들었답니다. 여름내내 구름이 많이 낀 하늘이 이어져 일조량도 안 좋았어요. 다행히 수확을 앞두고 3주 동안 태양이 쨍쨍 비추면서 고온건조한 인디안 서머 날씨를 선물 받았답니다. 특히 포도 생장기간이 다른 해보다 길었기에 천천히 부드럽게 완벽한 숙성도에 도달했답니다.”
UGCB Ronan Laborde 회장.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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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르드 회장은 고온건조한 2020년과 달리 2021년은 서늘한 해였기에 와인의 스타일도 크게 차이가 난다고 설명합니다. “2020년은 와인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 바디감이 꽉 찬 풍부하고 진한 그랑크뤼가 만들어졌습니다. 알코올도수가 높고 탄닌도 강하며 숙성잠재력도 높은 편입니다. 반면 2020년은 쿨 클라이밋으로 2011, 2012, 2014, 2017 빈티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늘한 기후 덕분에 보르도 그랑크뤼의 특성은 잘 유지하면서도 알코올도수는 낮고 섬세하며 균형감이 좋고 탄닌이 굉장히 부드러운 캐릭터를 지녔습니다. 과육이 매우 풍부해 아로마틱하면서도 신선한 과일향이 돋보이는 퓨어한 빈티지가 탄생했고 이에 ‘네오 클래식’이란 별명을 얻었답니다. 특히 2021 빈티지는 오래 숙성하지 않아도 영한 상태에서 바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유통업체들이 선 구매하는 시스템인 엉 프리뫼르(En Primeur)에서도 2020 빈티지와 비슷한 가격을 받았을 정도로 품질면에서도 뒤지지 않는답니다.”
UGCB Ronan Laborde 회장과 한국소믈리에대회 2024 우승자 김민준 소믈리에.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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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Canon la Gaffeliere.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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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기후였던 만큼 드라이 화이트 와인은 최적의 기후 조건을 선물 받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덕분에 컬러가 굉장히 선명하면서 화려한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테른과 바르삭도 수확량은 크게 줄었지만 마무리때는 완벽한 귀부와인의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생산량이 급감한 만큼, 소떼른과 바르삭 2021은 구하기 어려운 매우 귀한 와인이 돼버렸습니다.
유명 와인전문 매거진 디캔터도 “최근의 많은 찬사를 받은 보르도 그랑크뤼 2016, 2018, 2019, 2020 빈티지와는 달리 2021 빈티지는 1980~1990년대 보르도를 연상시키는 정제되고 우아하며 알코올 함량이 낮은 멋진 ‘쿨 클래식’으로 회귀한 빈티지”라고 평가합니다.
그랑크뤼 전문인 시음회 서울 2024 현장.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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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La Tour Carnet 매니저 Violette Tan.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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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빈’의 오해와 진실
Chateau Lascombes 홍보매니저 Karine Barbier.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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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역별로 왜 이렇게 큰 편차가 생길까요. 생떼스테프, 포이악, 생줄리앙은 면적이 크지 않고 지롱드 강과 거의 붙어있어서 피해가 전혀 없었답니다. 바로 강의 미세기후가 큰 역할을 하기때문입니다. 보통 4∼5월초에 서리 피해가 생기는데 아무리 춥거나 아무리 더워도 강 주변은 섭씨 12~1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서리 피해가 없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랍니다. 마고(Margaux)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고는 포이악보다 면적이 3배가 큰 와인 산지여서 내륙쪽 일부 지역은 서리 피해를 봤지만 강쪽으로 붙은 포도밭은 피해가 없었답니다.
Chateau Lynch Bages 오너 Marina Cazes(오른쪽).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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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Leoville Poyferre 수출매니저 Claire Ridley.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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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된 양조기술도 빈티지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요즘 보르도는 모든 최첨단 양조 기술 총동원해 빈티지가 나쁜 해에도 ‘꽤 마실만한’ 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답니다. 최악인 2013년도 잘 살려냈을 정도죠. 역삼투압 방식으로 포도의 수분을 빼내 맛을 농축시키거나 포도가 아주 나쁠때는 아예 얼려서 수분을 짜내 포도를 응축시킵니다. 또 발효 끝난 뒤에도 껍질을 그대로 담가 둬 탄닌을 더 뽑아내기도 합니다. 발효를 거쳐 알코올이 높아지면 탄닌이 더 잘 추출되기때문이에요. 앙 프리머 테이스팅때 와인을 맛나게 만들기 위해 ‘미량산소주입(Micro Oxigenation)’으로 빨리 숙성시켜 탄닌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Chateau Canon la Gaffeliere 수출매니저 Magali Malet Serres와 한국호텔소믈리에대회 2024 우승자 김현욱 소믈리에.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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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Clarke.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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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 확인 보르도 그랑크뤼 2021 시음회
Chateau Le Gay 오너 Henri Parent 부자.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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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Clinet.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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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CB 입장에서 한국은 얼마만큼 중요한 시장일까요. “한국은 보르도 그랑크뤼 수입국중 11위입니다. 중국, 미국이 1, 2위를 다투고 영국, 스위스, 독일, 일본, 싱가폴, 벨기에, 캐나다, 한국 순입니다. 특히 한국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2021년에 전년 대비 두배에 달할 정도로 그랑크뤼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2022년은 2020년 대비 세배에 달했죠. 2023년 최고조를 찍었는데 금액기준 4000만유로(약 591억원)가 한국에 수입됐답니다. 올해 수입량은 줄었지만 2020년 대비 2.5배 규모가 계속 유지되고 있어요. 한국 프리미엄 와인시장의 45%를 보르도 그랑크뤼가 차지할 정도로 한국 소비자들에 보르도 그랑크뤼를 선호한답니다.”
Chateau Bouscaut 수출매니저 Armand cogombles.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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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Langoa Barton.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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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보르도 그랑크뤼는 최소한 10년은 셀러에서 묵혀야 제맛을 냈는데 최근 스타일이 많이 바뀐 것도 소비가 크게 늘고 있는 요인중 하나라고 설명합니다. “보르도 그랑크뤼는 10여년 전부터 영할때 마셔도 좋은 와인으로 생산되고 있답니다. 두가지 요인때문입니다. 첫째,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따뜻해지다 보니 잘 익은 포도를 수확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두번째는 생산자들의 노력과 양조 기술의 발전덕분입니다. 최첨단 양조 기술을 총동원해 오래 기다릴 필요없이 와이너리 셀러 숙성과 병입 과정에서 바로 맛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됐답니다. 여기에 숙성 잠재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덕분에 보르도 와인이 더 맛있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루아르와 영국 스파클링 와인도 점점 좋아지고 있답니다.”
Chateau Cap de Mourlin 오너 Thierry Capdemourlin.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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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Pavie Macquin 수출매니저 Julie Fauchie. 최현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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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UGCB를 이끌고 있는 라보르드 회장은 이런 보르도 그랑크뤼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표 프로그램이 ‘그랑크뤼 파쿠르(Parkour·여정)’입니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의 고등학교를 방문해 미래의 소믈리에를 육성하는 그랑크뤼 교육을 진행합니다. 또 프랑스 소믈리에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훈련비와 세계소믈리에대회 출전 비용 등을 지원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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