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방북 중인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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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달 29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내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행사에 북한군 부대를 초대했다. 김정은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러시아의 군사대표단을 인솔해 평양을 찾은 벨로우소프 장관을 환대하면서 주요 일정을 함께 소화했다. 러시아 파병에 대한 반대급부를 챙기는 동시에 미국을 향해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계 없이 양국 밀착을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가)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평양을 방문한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은 김정은과 만나 내년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북한군 부대 파견을 초청했다며 "긍정적인 결정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러시아 전승절은 옛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를 거둔 1945년 5월 9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러시아는 전승절 열병식에서 군사 역량을 과시해 왔다. 러시아 정부는 80주년을 맞는 내년에 성대한 행사를 치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북한과 러시아 군 수뇌부가 지난달 29일 평양에서 국방장관회담을 진행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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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전승절엔 친(親)러시아 성향으로 분류되는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가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럼(To Lam) 베트남 국가주석,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도 초대장을 받은 상태다.
전문가 사이에선 러시아 측이 북한군을 열병식에 초대한 만큼 김정은이 직접 북한군을 이끌고 참석하면서 국제 다자무대에 데뷔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에게 "모스크바 답방을 기다리겠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결을 공언한 가운데 러시아 측이 내년 5월에 열릴 전승절 행사를 언급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을 향해 북·러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돈독해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내년 5월 김정은의 방러는 유동적이지만 북한 군대나 장비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도열한 모습은 한국 입장에서도 섬뜩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을 대표로 하는 러시아 연방 군사대표단이 지난달 30일 평양 모란봉에 위치한 해방탑을 참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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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접견을 위해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한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은 1박 2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평양을 떠났다. 노동신문은 1일 "러시아연방 군사대표단이 11월 30일 평양을 출발하였다"며 "평양국제비행장에서 이들을 환송하는 의식이 있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 대표단은 지난달 30일 귀국에 앞서 평양 모란봉에 있는 해방탑에 헌화했다. 해방탑은 1945년 북한이 해방 후 전사한 소련군 장병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다.
앞서 벨로우소프 장관은 지난달 29일 노광철 국방상과 '북·러 국방장관회담'을 갖고 "두 나라 군대 사이의 전투적 단결과 전략 전술적 협동을 강화해나가는 문제"를 논의했다. 이어 김정은을 예방해 지난 6월 양국이 맺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을 언급하면서 "두 나라 관계를 정치, 경제, 군사를 비롯한 제반분야에서 보다 활력 있게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북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 발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미국의 행동이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0일 보도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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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군대와 인민은 앞으로도 제국주의 패권 책동에 맞서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정을 수호하려는 러시아의 정책을 변함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서방이 끼예브 당국(우크라이나 당국)을 내세워 자국산 장거리 타격 무기들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게 한 것은 분쟁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이라며 러시아를 옹호했다.
전문가들은 북·러 양국이 이번 접견을 통해 ▶북한군 추가 파병 및 무기·군수 생산 ▶북·러 연합훈련 ▶북한군 파병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급부 등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을 내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벨로우소프 장관은 경제통으로 제재 우회 결재를 다룬 인물"이라며 "북한이 원하는 무기 관련 기술지원, 군수생산시설 확장 관련 지원 제공 문제와 함께 북한에 제공할 경제적 반대급부 등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성의 초청에 따라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국방상 안드레이 벨로우쏘브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연방 군사대표단이 11월 30일 평양을 출발하였다"고 보도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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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이 이번 접견을 두고 "국방 분야를 비롯해 조로 두 나라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가일층 심화 발전시키고 급변하는 지역 및 국제 안보 환경에 대처해 양국의 주권과 안전 이익, 국제적 정의를 수호하는 문제들에 대한 폭넓은 의견교환이 진행됐다"면서 '만족한 견해일치'를 보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한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북한이 더욱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리처드 무어 영국 해외정보국(MI6) 국장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손실은 무한대로 높다"며 "중국은 향후 영향을 신중히 검토할 것이고, 북한은 더 대담해질 것이고, 이란은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러시아 지원에 나선 북한이 러시아가 승리할 경우 더 노골적인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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