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왼쪽) 캐나다 총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를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만찬을 했다며 소셜미디어 엑스(Xㆍ옛 트위터)에 올린 사진. 사진 엑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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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의 포문을 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타깃을 전방위로 넓혀 가면서 세계 각국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략적 경쟁 상대인 중국은 물론 미국의 이웃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폭탄’을 예고한 데 이어 신흥 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를 타깃으로 한 관세 폭격을 예고하며 국제 무역 질서를 뒤흔들 태세다.
트럼프의 위협이 당장 발등의 불이 될 위기에 처한 캐나다는 기민한 대응에 나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이 있는 플로리다 마러라고를 황급히 찾아 약 3시간의 회동을 가졌다. 지난달 25일 트럼프 당선인이 불법 이민과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의 미국 유입 경로라며 “대통령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멕시코와 캐나다 모든 수입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한 지 나흘 만의 방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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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트뤼도와 마약 등 논의”
트럼프 당선인은 30일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트뤼도 총리와 생산적인 회담을 가졌다”며 “불법 이민의 결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펜타닐 등 마약 위기, 공정 무역 거래, 미국의 대(對)캐나다 무역적자 등 양국이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트뤼도 총리도 소셜미디어 엑스(X)에 트럼프 당선인과 전날 함께 한 만찬 사진을 올리며 “우리가 다시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미 대선 후 트럼프가 당선인 신분으로 공식 회동한 주요 7개국(G7) 정상은 트뤼도 총리가 처음이다. 트뤼도 총리가 사전 공개 일정에는 없었던 플로리다행에 나선 것은 트럼프의 관세폭탄 위협을 그만큼 심각하게 봤기 때문이다. 고물가와 경기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캐나다 경제는 복합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차준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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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세계 6위 대미 무역 흑자국
미 상무부에 따르면 캐나다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719억 달러로, 중국(2782억 달러)ㆍ멕시코(1614억 달러)ㆍ베트남(1046억 달러)ㆍ독일(832억 달러)ㆍ일본(723억 달러)에 이은 세계 6위 규모다. 한국은 51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거둬 미국의 무역적자 대상국 8위에 해당한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집권 1기 때 악연이 있다. 2018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산 철강ㆍ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자 트뤼도 총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매겼다. 2019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의 중 트뤼도 총리가 트럼프를 조롱하는 발언이 공개되자 트럼프가 “이중적인 인간”이라며 불쾌감을 표한 일도 있었다.
그런 트럼프가 2기 집권을 출범하기도 전 ‘관세 25%’ 방침을 밝히며 선전포고하자 트뤼도 총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회동이 끝난 뒤 트럼프는 “우리는 에너지ㆍ무역ㆍ북극 등 다른 많은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알렸다. 양국 간 송유관 건설 재개 문제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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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 ‘관세 철회’ 확신 못 얻어”
하지만 AP통신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는 관세 부과 위협을 철회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확인을 얻지 못한 채 귀국했다. 캐나다 고위 당국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며, 보복 관세를 매길 미국산 제품 목록도 이미 작성되고 있다”고 AFP에 말했다. 다만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재무장관은 지난달 29일 중국이 값싼 상품을 북미로 수출하기 위해 미국ㆍ멕시코ㆍ캐나다 무역협정(USMCA) 뒷문을 이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에 대해 “USMCA 회원국들은 중국에 대해 완전히 일치된 정책을 만들 기회가 있다”고 답해 사안에 따라 미국과 공조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캐나다와 함께 25% 관세 부과 대상으로 지목된 멕시코도 피해 최소화 대책에 부심하며 대응에 나섰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의 관세 발표 이틀 뒤 통화를 하고 트럼프가 줄곧 문제 삼은 미ㆍ멕시코 국경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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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ㆍEUㆍ中도 대책 마련 부심
셰인바움 대통령은 또 트럼프가 제기한 중국산 전기차의 멕시코 우회 수출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과 거리를 두는 태도를 취하며 트럼프의 압박을 완화하려 노력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가 최근 멕시코에 공장 부지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셰인바움 대통령은 “중국 자동차 회사의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은 확인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지난달 26일 트럼프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미국의) 관세가 부과되면 그에 대한 관세 조치가 (상대국에서) 이어질 것”이라며 보복관세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관세 위협에 유럽도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유럽도 강온 양면 카드를 동시에 검토하는 모습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달 28일 “무역전쟁은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며 협상 전략을 제안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는 “유럽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단일대오를 통한 대미(對美) 협상력 강화를 촉구했다.
트럼프가 펜타닐 등 마약 유입의 진앙지로 지목하며 10%의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중국도 “무역전쟁에 승자는 없다. 독단적 관세 부과로 미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발발하면서 무역전쟁을 대비하고 있다.
일각에선 관세 인상을 공언한 트럼프에 보복 관세 등으로 맞서는 대신 미국 상품의 구매 확대 등으로 상호 이익을 꾀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앞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8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방안을 트럼프 당선인에게 제안한 적 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미국산 LNG, 농산물, 무기의 구매를 늘리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산 대두의 구매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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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에 “달러 도전시 관세 1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브릭스(BRICS,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ㆍ남아공 등 신흥 경제국 연합체) 국가들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사진 트루스소셜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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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트럼프 당선인은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ㆍ남아공 등 브릭스(BRICS) 소속 국가들의 달러 대체 통화 논의를 비판하면서 관세 인상으로 맞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29일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브릭스 국가들이 새로운 자체 통화를 만들거나 미 달러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안 그러면 100%의 관세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시도에는 ‘관세 몽둥이’로 대처하겠다는 엄포다.
실제로 브릭스 국가들은 역내 통화 활용을 늘리는 한편 중앙은행 간 디지털 화폐(CBDC)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달러의 무기화'를 언급하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화 결제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등 공공연히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유 거래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관세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했던 트럼프가 무역적자는 물론 불법 이민과 마약 등 무역과 거리가 먼 정책 현안이나 달러 패권 등 통화 정책에 대해서도 관세를 무기 삼아 압박 강도를 높이는 양상이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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