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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트럼프 시대의 기후대응 속도조절론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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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1월19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에서 열린 스페이스엑스 스타십 로켓 6차 시험발사를 관람하기 전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걷고 있다. 브라운즈빌/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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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결국, 그가 돌아온다. ‘기후변화는 최악의 사기’라는 말을 조금의 망설임이나 부끄럼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사람, 그런 당당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자리에 올라 열병 앓는 지구를 벌벌 떨게 하는 ‘희대의 빌런’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온다. 심지어 이번엔 화성 정복을 꿈꾸는 일론 머스크까지 데리고서!



지난 한달간 트럼프 2기를 전망하는 보고서와 기사가 쏟아졌다. 친화석연료, 규제철폐, 미국 우선주의는 8년 전과 대동소이하지만 이번엔 ‘전지적 머스크 시점’을 투사한다. ‘트럼피즘이 머스크 필터를 통과하면서 더 강화될까, 약화될까’가 관전 포인트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전기차 지원은 광기이며, 전기차 지지자는 지옥에서 썩어야 한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랬던 그가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머스크의 지지를 얻었으니 어쩌면 입장이 바뀔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보조금이 확대된 최근 몇년 테슬라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계속 줄었으니 머스크 또한 보조금 폐지를 바랄 수 있다.



대중 관세도 비슷하다.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물리는 관세에 추가로 10%를 더 부과하는 등 강경노선을 예고했다. 하지만 머스크 입장은 다르다. 테슬라는 상하이 공장을 지으면서 여러 혜택을 받았다. 중국 국영은행에서 좋은 조건으로 5억달러를 빌렸고, 법인세도 10%포인트 감면받았다. 중국 현지 기업과 합작 없이 지분 100%를 보유한 첫 외국 기업이기도 하다. 이 공장은 지금 글로벌 공급량의 절반을 담당한다. 지금은 두 번째 공장을 짓고 있다. 이런 연유로 머스크가 물 밑에서 미중 갈등 완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괴상하다. 아무리 정치가 자본주의에 복속된 지 오래라 하더라도 업계도 아닌 특정 기업의 유불리로 정책의 향방을 내다보는 게 너무나 괴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머스크가 수장을 맡은 조직의 이름마저 ‘도지’(DOGE·정부효율부)라니. 일각에선 도지가 실제 부처가 아닌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막상 역할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권력이란 내 손에 들린 무기에서 나오는 것일 뿐 아니라 최고 권력자와의 심리적 거리에서 나온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 기괴한 조합의 아교인 친기업·친시장주의 덕에 기후는 뜻밖의 기회를 만날지 모른다.



1일 새로 출범한 유럽연합 집행위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100일 내 청정산업 딜을 마련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그동안 제도적 틀은 얼추 마련했으니 이젠 시장 창출과 선점에 전념하겠단 구상이다. 중국에선 청정에너지 투자가 국내총생산 성장의 40%를 견인하는 수준까지 왔다. 지난달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선 국제탄소시장 세부 규칙이 9년 만에 최종합의됐다. 국가 간 감축량을 사고파는 장이 열리는 셈인데 결국 효율적인 감축 기술을 갖춘 나라가 더 많은 감축 실적을 챙길 수 있다. 에너지·산업 전환이 시장과 긴밀히 엮이게 된 상황, 이것이 트럼프 1기가 출범한 8년 전과 크게 다른 지점이다. 트럼프가 틱톡이나 가상화폐에 부린 변덕이 청정산업에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트럼프 당선 뒤 우리나라에서 탈탄소 속도조절론이 눈에 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도 탄소중립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거나 “화석연료 활용도 높이기에 기반한 낮은 전기요금 추구로 산업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등장했다.



트럼프가 기후변화를 사기로 몰아붙여도, 머스크가 가치와 이윤 간 본말을 전도한다 해도 이미 시장의 힘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탈탄소 전환을 막을 순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그리고 어쨌든 트럼프 2기도 4년 뒤엔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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