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부결 당론, 조직적 보이콧
탄핵 트라우마·시간 끌기 '꼼수' 지배적
"尹 지지율 10%대 무너지면 항복할 것"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제안설명에서 국민의힘 의원 전부의 이름을 부르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기립해 이름을 부르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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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상정된 7일 본회의장. 국민의힘 의원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헌법기관 양심에 따라 투표해달라"는 간절한 외침과 함께 여당 의원들의 이름이 한명 한명씩 호명됐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표결에 참석한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을 제외한 105명 여당 의원들은 민심의 요구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의원총회장에 스스로를 가뒀다.
8년 전 보수의 선택은 달랐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탄핵안이 올라왔을 때 새누리당은 의원들의 표결을 자율에 맡겼다. 국회법에 따라 "양심에 따라 투표할 것"을 독려한 것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의원 128명 중 최소 62명이 찬성하면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반면 이번에 국민의힘은 탄핵을 막겠다며 '표결 보이콧'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표결 참여에 동의한 의원들은 10명 안팎 소수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실제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은 105명 여당 의원들의 비겁한 침묵 속에 의결정족수(200명) 미달로 폐기됐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8일 "반란표를 막기 위해 사실상 투표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으로 보인다"며 "개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與 계엄 '위헌' 인정하고도 탄핵은 반대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7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 재의 투표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재의투표 직후 본회의장을 나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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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저지른 비상계엄은 국정농단보다 더 심각하게 헌법질서를 훼손한 사안이다. 국민의힘도 비상계엄은 위헌이고, 위법한 사안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이견이 없다. 국민의힘 의원 일동이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 여당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모든 과정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상응하는 법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탄핵만큼은 안된다고 버텼다. 국민의힘은 "국정마비와 헌정중단이 되풀이 돼선 안된다"는 명분을 들었지만, 탄핵 불발에 따른 국정 공백 상황과 국민들의 커지는 분노와 혼란을 따져보면 군색한 변명이란 비판이 나온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에 따라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 등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된다. 8년 전 대한민국은 탄핵을 경험하고도 질서 있게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정을 정상화시킨 경험도 있다. "탄핵은 헌정 중단이 아니라 헌정 질서의 회복"(국내외 대학교 정치학자 573명은 시국성명)이란 반박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당은 탄핵이 아닌 "더 질서 있고 책임 있는 방식"을 찾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날까지 "질서 있는 퇴진"을 거론한 것 이외에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탄핵은 망하는 길" "배신자 낙인"... 탄핵 포비아
이 같은 여당의 선택을 두고 정치권에선 "탄핵은 곧 당이 망하는 길"이라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8년 전 탄핵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보수 지지층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탄핵 주도파가 만들었던 바른정당이 정치권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것을 보며 탄핵 포비아가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 탄핵안 표결 전날 의원총회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건 우리 잘못이다", "같은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중진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탄핵으로 또 한번 야권에 정권을 헌납할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도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걸려 있는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최소 6개월은 버텨야 한다는 스케쥴에 사로잡혀 무작정 버티기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내란 정당은 해산사유"... 탄핵 단일대오 유지될까
국민의힘 의원들이 7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학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퇴정하자 서울 여의도 국회대로 일대에 모인 시민들이 표결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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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법 수호의 문제를 '정권 밥 그릇 지키기'로 접근하는 여당의 태도에 민심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2014년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선동 혐의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사례까지 거론하며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과 내란의 공범이 되기로 선택하면 해산의 길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은 막아냈지만 야당이 무한 탄핵안 발의를 예고한 상황에서 '윤석열 사수'가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촛불 규모와 여론조사 추이에 따라 여당의 항복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며 "박근혜 탄핵 당시 대통령 지지율이 5%까지 떨어졌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여당도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에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 동참했던 18명 의원들의 '용기 있는 회군'을 기대하고 있다. 전날 뒤늦게 표결에 동참해 탄핵 반대 표를 던졌다고 밝힌 김상욱 의원도 "국회의원은 당리당략보다 헌법수호와 국가수호가 먼저"라며 "첫 표결은 당론을 따랐으나 이후 탄핵 표결 시까지 명시적 조기 하야 등 조치가 없으면 찬성 표결할 예정"이라고 못 박았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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