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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MT시평]이 막장도 밝혀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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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시간은 만물 중 가장 현명하다. 모든 것을 밝혀내기 때문이다'(Time is the wisest of all things that are; for it brings everything to light). 지금의 튀르키예 서부지역 밀레투스에서 기원전 6세기에 활약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의 말이다. 아르케, 즉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보고 자연의 근본원리를 탐구한 그는 시간이 지나면 진리가 드러난다는 낙관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트로이도 튀르키예 서부의 도시국가였다. 그에 따르면 트로이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12세기쯤 밀레투스는 소아시아의 중심세력이던 트로이의 동맹도시였다. 탈레스도 한 세기 전에 나온 두 서사시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호메로스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현상과 세계의 이치를 과학적 사고를 통해 이해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신화는 여전히 많은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트로이의 왕자이자 지독한 사랑꾼이던 파리스가 어느 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개입으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야반도주 사건을 일으킨다. 이에 격분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이 그리스 연합군을 모아 트로이를 침공한다. 그러나 10년 동안의 치열한 전투에도 난공불락의 요새인 트로이를 뚫지 못했다. 이때 전략의 여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오디세우스의 기만술로 탄생한 트로이 목마를 통해 단숨에 트로이를 함락한다.

트로이 목마 신화는 인간 본성과 심리, 그리고 전략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말은 당시 트로이인들에겐 신성한 동물이었고 이 때문에 목마를 평화의 상징으로 여겼다. 오디세우스는 목마를 '아테나 여신의 신성한 선물'로 위장했고 이를 통해 트로이인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아폴론 신의 도움을 받은 파리스가 요새 안 전투 도중 적군의 용병이자 영웅이던 아킬레우스를 활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전사하지만 트로이의 몰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트로이 목마 사건은 결국 트로이인들의 방심과 자만, 그리고 주술적 세계관이 빚은 참사였다.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혼란스러움 속에서 낙관보다는 비관적 생각이 가득해진다. 불시에 가슴이 뛰고 지적 무기력에 빠진다. 시간이 흐르면 이 또한 극복하겠지만 얼마나 긴 혼돈의 시기를 겪어야 할까. 현직 대통령이 내란수괴 혐의 피의자로 입건되고 총리, 국정원장, 전직 행정안전부·국방부 장관, 군과 경찰의 수뇌부가 내란혐의로 입건 또는 구속되고 나머지 국무위원 가운데 다수도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하는 해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럴 때는 과학보다 신화적 상상력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풍전등화의 집권여당을 트로이, 제1야당을 그리스 연합군이라 치면 낭만의 화신 파리스는 누구일까. 그에게 죽임을 당하는 용병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목마의 설계자이자 도시 트로이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는? 참고로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갖은 고초를 겪다 천신만고 끝에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이 막장의 모든 결론을 밝혀줄 것이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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