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하락에 주재원 실질 소득 ↓
'한국, 대형 사업 수주 놓칠라' 우려까지
해외 거래처에 '한국 안정적' 해명 진땀
경북 문경에서 일하는 베트남인 외국인 노동자 쩐쑤언이 마늘 밭에서 일한 뒤 받은 일당을 들어보이고 있다. 받은 돈의 대부분은 베트남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낸다. 쩐쑤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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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문경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베트남인 쩐쑤언(33)은 그간 월급 대부분을 고향 가족에게 보냈다. 하지만 지난 6일에는 평소의 절반만 송금했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원화 가치가 급락한 탓에 돈을 많이 보낼수록 손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12일 기준 1원당 베트남 동화는 17.6동 수준. 지난달 비슷한 시점(1원당 18.6동) 대비 5.4%나 떨어졌다. 300만 원을 송금할 경우 한 달 전보다 300만 동(약 17만 원)가량 손해를 보는 셈이다. 올해 3분기 베트남 현지 노동자 월평균 소득이 760만 동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쑤언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인 4년 전 환율(1원=약 19.6동)과 비교하면 허공에 날리는 금액은 더 커진다. 그는 10일 한국일보에 “베트남 최대 명절 뗏(음력 설)이 다가와 고향에 목돈을 보내야 하는데 답답하다”며 “한국 정치는 잘 모르지만 빨리 좋은 지도자가 나와 환율이 안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윤 대통령의 네 번째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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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그대로인데 실질 소득 줄어”
12·3 불법 계엄 여파에 쑤언처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해외 거주 교민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치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은 물론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 환율까지 줄줄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원화로 한국에서 월급과 체재비를 받은 뒤 현지 화폐로 바꿔 생활해야 하는 주재원들도 예상보다 커진 출혈에 울상을 짓는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중견기업 주재원 정모(31)씨는 “곧 6개월치 집세를 내는 기간이 돌아오는데 이전보다 20만~30만 원가량 더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름치 식비가 주거비로 빠져나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12일 오전 베트남 하노이의 한 은행 대형 화면에 동·달러 환율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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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경우 국제학교나 한국형 사설 학원 상당수가 미국 달러 기준으로 학비를 책정하고 있어 학부모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중학생 자녀를 영어·수학 학원에 보내는 한 중견 기업 베트남 주재원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이후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학비 부담이 커졌는데 불법계엄 선포 사태 이후 한국 돈 가치가 더 떨어져 부담이 배가 됐다”며 “월급은 그대로인데 환율 때문에 실질 소득이 20% 정도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3원 내린 1,431.9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인 이달 2일(1,406.5원)보다는 무려 25.4원이나 껑충 뛰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를 마친 뒤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다 길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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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따낸 계약 해외에 뺏길라’
국가 이미지 손상에 따른 피해도 불가피해졌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는 물론, 이후 정치권의 대응까지 외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한국이 ‘정정 불안 국가’로 여겨지는 탓이다. 수출 업무를 하는 한국 기업은 국가 신뢰도 하락이 계약 파기로 이뤄질 수도 있어 해명에 진땀을 빼고 있다.
베트남에 사업장을 둔 한국 의류 회사 직원 최모(44)씨는 “미국과 인도의 거래처로부터 회사는 괜찮은지, 납기일은 맞출 수 있는지 등을 묻는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며 “자칫 어렵게 따낸 계약을 해외 경쟁 업체에 빼앗길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해외 사업 수주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베트남의 경우 지난달 국회 승인을 얻은 94조 원 규모 남북고속철도를 비롯해 원전 개발 등 메가톤급 사업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홍선 주베트남 한인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체코 원전처럼 민관이 ‘원팀 코리아’로 수주를 위해 뛰고 장관급 인사가 베트남 당 관계자와 만나는 등 톱다운 논의도 필요한데, 정치 이슈로 한국 정부 구심점이 약해지고 경쟁력에서 밀릴까 우려된다”며 답답해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관람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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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대목을 앞두고 덮친 악재에 동남아 국가 전문 관광 업계도 울상을 짓고 있다. 1년 내내 눈을 보기 힘든 동남아 지역 국민들은 겨울철에 한국을 많이 찾는데, 정치 상황 불안에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서울관광재단이 15개 인바운드 여행사를 확인한 결과, 지난 3일 이후 동남아 지역 단체 여행 24건이 취소됐다. 한 대형 동남아 인바운드 여행사 관계자는 “오는 20일 이후 진행될 예정이던 단체 여행 취소율이 80%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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