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담화문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고, 오로지 국회의 해제 요구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사법부 판례와 헌법학계의 다수 의견”이라고 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조치는 국회가 통제할 대상이지,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비상계엄, 대통령의 통치행위 맞는다”
비상계엄 자체가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된다. 대법원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건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띠는 행위이고, 그 선포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관은 오로지 계엄 해제권이 있는 국회”라며 “사법기관인 법원이 심사하는 것은 사법권의 내재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도 1996년 금융실명제에 대해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발동되는 행위로서 그 결단을 존중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통치행위”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
◇”헌법 벗어나면 사법적 판단 받아야”
하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여러 가지 불법적인 상황이 드러나 과연 정당한 통치행위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다. 헌법학자들은 “통치행위도 헌법의 한계 내에 있어야 하고, 이를 벗어나면 당연히 사법적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치행위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면 정당한 통치행위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다른 국가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지는 충분히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헌재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도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재량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송금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과 같이 헌법에 그 요건이 명시돼 있지 않은 행위들에 한한다”며 “계엄 선포는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적 비상사태’ 등으로 그 요건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대법원도 1997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12·12 군사 반란 및 5·18 내란 사건에서 계엄 포고령에 대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 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 법원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수 있다”고 했다.
◇尹이 말하는 ‘국정 마비’, 계엄 요건 되나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거대 야당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며 “이것이 국정 마비이고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고 했다. 계엄 선포의 요건인 ‘전시·사변·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적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밝힌 야당의 ‘입법 폭주’는 헌법상 계엄령 발동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상계엄 요건에 해당하려면 전시에 가까운 엄청난 소요가 있어야 한다”며 “야당의 입법 폭주를 비상사태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계엄은 무력을 통해 국가를 마비시키려고 한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전복 행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다만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비상계엄 선포권은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비상대권 중 하나인 만큼, 지금이 비상사태인지를 판단할 권한은 오로지 대통령에게 있다”며 “설령 국민의 눈높이와 다르다 하더라도 대의민주주의에 따라 국민 주권을 부여받은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판단하되 양심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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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 적용 가능한가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라면서 내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윤 대통령은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느냐”며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조치를 나라를 망치려는 내란 행위로 보는 것은 우리 헌법과 법 체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란죄는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지난 3일 비상계엄은 민주당의 패악을 경고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입장이다.
◇국회 기능 마비 등 ‘국헌문란’의 목적 입증돼야
하지만 경고용이라고 하기에는 계엄 당일 그 수위를 벗어나는 상황들이 국민이 보는 앞에서 펼쳐졌다.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국회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갔고, 무장한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관에 진입하는 장면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입법부 무력화를 위해 군경을 국회에 투입하고, 정치인 체포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내란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병력을 동원해 국회의원의 권한 행사를 제한하려 했다면 그 자체로 ‘국헌문란’이라는 목적성이 인정될 것”이라고 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란죄는 범행 실행 자체만으로 혐의가 성립하는데 국회에 병력이 투입됐다”면서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윤 대통령 말은 ‘2시간만 감금했으니 감금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소규모 병력이 투입됐고, 물리적 충돌이 없었던 데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즉시 받아들인 점 등을 보면 국헌문란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황정근 변호사는 “국회 해산 시도 등은 헌법에 위반돼 탄핵 사유는 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폭행·약탈·협박 등이 없었던 만큼 내란 혐의는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국회 진입·정치인 체포 지시” 쏟아지는 증언들
그러나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인데도 윤 대통령이 국회 진입, 정치인 체포 등을 지시했다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전화해 ‘빨리 문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했다”고 했다. 12일 구속영장이 신청된 조지호 경찰청장도 “윤 대통령이 수차례 전화해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전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불러 체포 대상 정치인 10여 명의 명단 등을 건넸다는 진술도 경찰이 확보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도 계엄 당일 윤 대통령으로부터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증언들에 대한 입장은 따로 밝히지 않았다. ‘경고성 계엄’이라는 주장을 보면 수사 과정에서도 국회 봉쇄나 정치인 체포 등을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부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12·12 군사 반란 등으로 권력을 빼앗아 내란죄 처벌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신분이어서 내란을 통해 얻을 실익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 가담자들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윤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수사를 통해 내란의 목적과 실행 과정 등이 규명되기 전에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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