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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한강이 스웨덴서 받은 첫 질문…수상소감 아닌 '계엄'이었다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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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한강 작가의 기자회견에서 처음 질문을 던진 이는 한국 기자가 아닌 스웨덴 사회자였다. 사회자는 한강의 모두 발언을 유도하며 "모두가 궁금해 할 질문"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하자고 했다.

3일 발생한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질문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처음 열린 기자회견이었던만큼 밝은 질문으로 시작하는 편이 좋았을테지만, 한강은 한국의 정국과 관련한 질문에 답해야 했다. 현장에서 지켜본 한국 기자들의 심경 또한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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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11일 스웨덴 스톡홀름 링케비 도서관에서 다문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이 도서관은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초청해 학생들과의 대담을 연다. 홍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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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스톡홀름 콘서트홀에는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려는 교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남 장흥군에서 파견된 축하사절단은 축하 현수막과 태극기를 들고 추운 거리에 나왔다. 축하 대신 규탄을 선택한 교민들도 있었다.

콘서트홀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광장에서는 교민들이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가 열렸다. 기쁨과 분노가 한데 뒤엉켰다. 축하하는 쪽이라고 해서 마음이 가벼웠을 리 없고, 집회에 나선 이들 또한 잔치에 재 뿌리는 격이 되지 않을까 고심했을 터다.

한강은 기자간담회에서 『채식주의자』 청소년 금서 지정 논란에 대해서도 자세히 답했다.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그가 정적을 깨고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폐기하는 것은 책을 쓴 사람으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라 말했다. 간담회장이 일순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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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유 기자(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9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 도서관에서 앤더스 올슨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을 인터뷰하고 있다. 홍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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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한국에 대한 스웨덴 시민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현장 반응을 취재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기자에게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어떤지, 한국에서 한강의 책이 왜 논란이 되는지 물어보는 스웨덴 시민이 적지 않았다.

앤더스 올슨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관한 코멘트는 거부한다"면서도 『채식주의자』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은 주저하지 않았다. "일부 성적인 묘사로 전체 작품을 깎아내려서는 안 되며 그런 묘사조차도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만 존재하는 주인공 영혜를 표현하기 위한 문학적 도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스톡홀름의 사서 교사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이들은 "읽지 말라"거나 "성인이 되면 읽어라"는 방식보다는, 청소년들이 책의 맥락을 이해하고 적절히 해석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묘사가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고, 작품을 비판적으로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청소년에게도 자신의 경험과 성숙도에 따라 작품을 스스로 선택하고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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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역대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소개하는 '문학의 밤' 행사에서 현지 교민 신미성 씨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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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비상계엄은 야당에 대한 경고였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또 다시 내놨다.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황당한 발언에 국민은 아연실색했다. 생각이 다른 이를 폭력으로 짓밟는 야만을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민주적 가치를 정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나.

생각이 다를수록, 갈등이 커질수록 터놓고 대화하며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이 작동돼야 할 곳은 정치판 만은 아닐 것이다.『채식주의자』청소년 금서 논란처럼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보다 '빨간 딱지'를 앞세우는 사회적 풍토 또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수 있다. 노벨문학상 주간은 그런 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다.

스톡홀름=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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