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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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은 이번에도 강공이었다. ‘광란의 칼춤’ 등 용어는 더 격해졌다.
국회 탄핵소추안 2차 표결을 이틀 앞둔 12일 윤 대통령은 A4용지 26매 분량의 대국민 담화를 했다. 29분 동안 읽어내려간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정당하다고 주장했을 뿐, 왜 군대까지 동원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은 없었다. 임기 단축 등 정국 안정 방안도 없었다. 그러면서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대통령직 수행 의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며 “어떻게든 내란죄를 만들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많은 허위 선동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느냐”며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란 말이냐”고 주장했다.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 계엄군을 동원한 것이 질서 유지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법적 권한으로 행사한 비상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고, 오로지 국회의 해제 요구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강조했다. “(비상계엄 발령은) 국민들에게 망국의 위기 상황을 알려드려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도 폈다.
계엄 선포 이유는 국민 관심 환기와 야당을 향한 경고 차원이고, 통치행위라는 헌법의 틀 안에서 내린 조치인 만큼 문제가 없고, 내란죄 성립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는 취지다. 향후 수사와 탄핵 심판 등에서 최대 쟁점이 될 내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윤 대통령이 자기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괴물”, “망국적 국헌(國憲·헌법) 문란 세력” 등으로 표현한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거짓 선동으로 탄핵을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며 “단 하나다. 거대 야당 대표의 유죄 선고가 임박하자, 대통령의 탄핵을 통해 이를 회피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려서라도 자신의 범죄를 덮고 국정을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야당이 집권하면) 나라를 완전히 부술 것”이라고 했다.
1차 탄핵안 표결 당일이었던 7일 이후 닷새 만에 카메라 앞에 선 윤 대통령은 주장의 강도나 어조가 확 달라져 있었다.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던 윤 대통령은 이번엔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29분 담화에서 ‘국헌’은 7번, ‘선동’은 4번 등장했다.
윤 대통령의 입장이 180도 바뀐 건 자신을 향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는 가운데 적극적인 반격을 통해 강성 보수층을 결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담화 뒤 윤 대통령은 이틀 전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률안과 대통령령(시행령) 42건을 재가하는 등 변함없는 직무 수행 의지를 드러냈다. 그간 접촉을 피하던 참모들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더 이상 밀릴 수는 없다. 싸워야지,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 폐족이 돼 죽는 건 박근혜(전 대통령)로 족하다”고 말했다. “이재명(민주당 대표)에게 조용히 정권을 헌납할 수는 없다”고 하는 참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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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윤 대통령은 “제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며 3페이지 분량을 할애해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선관위) 시스템 장비 일부분만 점검했지만 상황은 심각했다”며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다”고 했다. 그러곤 “저는 당시 대통령으로서 국정원의 보고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며 “(진상 규명이 불가능해) 저는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군이 선관위 청사로 출동한 이유를 소상히 설명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강성 보수층에 화답한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선관위는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인한 의혹 제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과 다름없다”고 반박했지만 부정선거를 주장해온 보수 유튜버들은 “선관위 발칵 뒤집어졌다”며 윤 대통령 담화에 호응했다.
수사당국의 내란죄 수사, 탄핵소추 가결 후 이어질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대응하며 법리 다툼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국이 급박하게 흘러가면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 계엄에 관여한 인사들이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내는 중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애당초 저는 국방장관에게 과거의 계엄과는 달리 계엄의 형식을 빌려 작금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께 알리고 호소하는 비상조치를 하겠다고 했다”라거나 “소수의 병력만 투입하고, 실무장은 하지 말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으면 바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했다”고 주장한 건 이에 대한 반박 성격이 짙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미 탄핵을 염두에 두고 헌법재판소 변론 요지를 미리 낭독해 극우의 소요를 선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라고 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편 가르기, 극단적으로 가는 것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은 극우 유튜브에 심각하게 중독돼 있다”며 “정상적으로 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고 했다.
허진·박태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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