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앞에 모인 군중 |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로마는 적게 잡아 700년 이상 군림했다. 유럽 지역을 포함해 북아프리카, 아시아 일부까지 차지하며 대제국을 형성했다. 대부분의 영토는 공화정 시기에 획득한 땅이었다. 제정 시대 황제들은 얻은 땅을 지키는 데 급급했다.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전 세계 정복이라는 야심 찬 계획을 포기했고, '땅따먹기'에 대한 후대 황제들의 야망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최근 출간된 '독재의 탄생: 로마 공화정의 몰락'(마르코폴로)은 대귀족과 군부가 대두하면서 로마 공화정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조명한 책이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로마사 교수인 에드워드 와츠는 공화정의 내적 갈등이 폭발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합의에 따른 전통적 가치가 무너져 마침내 로마가 일인 독재 정치 체제로 굳어가는 경로를 조명한다.
[마르코폴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책에 따르면 전성기 로마는 당대 거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통치기관, 의회 규칙, 정치 관습은 협상과 타협을 통해 생성되고 유지됐다.
그러나 정복 활동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대귀족들이 재산증식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오랜 노력 속에, 부(富)는 점점 몇몇 대귀족들에게 귀속돼 갔다. 빈익빈 부익부가 점차 심화했다.
공화국이 곪아가자 로마 최고 명문가 출신인 그라쿠스 형제가 농지 개혁 등 개혁 작업에 착수하며 기득권 혁파에 나섰다. 그러나 욕심에 찬 다수 귀족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형제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둘은 시차를 두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로마제국 동전 |
그라쿠스 형제 이후, 로마의 정치는 승자가 막대한 보상을 얻고 패자는 종종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는 제로섬 게임으로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공화정의 자랑이었던 '협상과 타협'의 기술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몇 차례의 파괴적인 내전이 발생했고, 결국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가 라이벌들을 격파해 황제의 지위에 오르며 혼란을 수습했다.
책은 기원전 280년부터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완전한 권력을 장악해 로마 공화정의 종말을 고하기까지 250여년의 기간을 다룬다.
카이사르 조각상 |
로마는 공화정 후반으로 갈수록 독재자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협상과 타협, 시민 감시 등 민주주의의 구심력이 약해지면서다. 저자는 술라, 마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처럼 민주적 제도를 파괴한 독재자를 일반 시민들이 지지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을 때, 공화국의 죽음은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한다. 책은 정치적 방해 행위를 묵인하고 정치적 폭력을 용인할 때, 국가가 어떤 위험에 휩싸이는지를 보여준다.
신기섭 옮김. 380쪽.
buff27@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