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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이후 일주일 만에 주가가 20% 가까이 급락했다. 지수 전체가 주저앉은 충격에 더해 회사 핵심 먹거리인 원전 사업이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겹쳤다. 이 때문에 미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업구조 개편이 무산됐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겪은 지난 일주일은 비상 계엄이 기업을 흔든 사례의 일부다. 산업계 전반을 살펴보면 사실상의 '기업 계엄'이다.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과 인공지능(AI) 기본법 처리가 중단됐다. 부처 합동으로 추진 중이던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도 무기한 연기됐다. 원전처럼 정부 지원이 절실한 방산 수출 역시 된서리를 맞았다.
모두 근원 경쟁력이 저하된 가운데 불거진 일이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주가 "(삼성이) TSMC 추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일부 기술적 문제 때문"이라며 대놓고 삼성의 기술을 지적할 만큼 반도체 파운드리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중국의 물량 밀어내기 공세로 이미 코너에 몰린 지 오래다.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에 빠진 배터리는 트럼프 변수에도 직면했다. 이 모든 문제를 기업과 함께 풀어가야 할 정부와 국회가 마비상태다. 국가 계엄은 해제됐지만 기업 계엄은 진행형인 이유다.
현재로선 기업 계엄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당장 돈줄이 말라간다. 정국 불안으로 기업의 대표적 자금 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었다. 지난 10월과 11월 매달 3조원 이상 순발행된 회사채는 이달 들어선 2000억원 이상 순상환됐다.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다. 기업 공개를 준비하던 기업들은 관련 일정을 전면적으로 미룬다. 기초 체력이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기업에 유동성 공급까지 막히면 답이 없다. 지금까지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고민었다면 앞으로는 생존 자체를 위한 고민을 하게 될 수 있다.
더 길어지면 파국적 결말도 배제하기 어렵다. 무디스와 스탠다드앤드푸어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는 일제히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이란 경고를 내놨다. 2015년에 정점을 찍고 유지중인 국가신용등급이 실제로 강등되면 기업 자금조달 비용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오른다.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 자체가 흔들린다.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환율과 물가가 급등한다.
계엄을 발동한 대통령이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이제 공은 국회로 왔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190명 재석, 190명 찬성으로 국가 계엄을 해제한 것처럼 기업 계엄을 풀 열쇠도 국회에 있는 셈이다. 이 난국을 빠르게 돌파할 수록 기업 계엄 해제 시점도 앞당겨진다. 경제와 일자리를 책임진 기업의 계엄 기간이 단축돼야 미국 포브스의 지적처럼 5100만 국민이 시간을 갖고 분할해서 치러야 할 '계엄의 비용' 규모도 줄어든다. 오는 14일 국회에서 여야 모두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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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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