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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어지러운 시국, 시끄러운 마음···가름끈으로 정리하고 다시 나가자[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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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군부독재 시절의 망령이 1987년 민주화 이후 37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하려 한 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치철학자 김만권, 문학평론가 장은수, 출판평론가 표정훈의 추천을 바탕으로 헌법·민주주의·계엄에 대한 책 10권을 모았다.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 참석자들이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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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직 경험이 전혀 없고,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존중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독단적 성향이 뚜렷한 인물”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태에 대한 미국 정치학자들의 답변이다. 멀쩡하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도널드 트럼프 같은 반민주적 성향을 가진 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는지를 학문적으로 따져본 것이다. ‘잠재적인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그 독재자는 “민주주의 제도를 정치 무기로 삼아 마음껏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렇다면 ‘잠재적 독재자’를 어떻게 감별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1)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2)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3)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4)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합하려는 정치인”이 바로 잠재적 독재자라고 말한다. 지금 한국에서 그 어떤 형태의 정치적 책임도 거부하고 비상계엄의 정당성만 고장난 레코드처럼 강변하는 대통령이 정확히 이 기준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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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밥 제솝 지음 | 지주형 옮김 | 여문책


국가이론의 세계적 대가로 알려진 밥 제솝 영국 랭커스터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국가이론을 집약한 책이다. 국가의 개념, ‘정상국가’와 ‘예외국가’, ‘실패한 국가’와 ‘불량국가’ 등 국가 관련 논점들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번역자 지주형 경남대 교수는 마르크스가 미완으로 남겨놓은 국가에 대한 비판 작업을 완결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필적할 만한 명저라고 평가한다. 지 교수는 ‘옮긴이 해제’에서 <국가론>이 현대 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을 몇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국가는 집권세력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둘째, “권력은 법과 제도가 행사하는 것이 아니며, 관료제적 합리성만으로 국가가 잘 기능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셋째, “국가권력은 시민사회의 동의에 기초할 때 훨씬 더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행사될 수 있다.” 동의를 얻지 못한 자의적 권력 행사는 “대개 저항에 부딪히고 마침내 좌초하게 되거나 정권의 상실 또는 비참한 말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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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 서병훈 옮김 | 책세상


계엄사령부는 지난 3일 발표한 포고령에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밝혔다. 밀(1806~1873)은 1859년 출판된 <자유론>에서 “‘출판의 자유’가 정부의 타락이나 전횡을 막아주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라는 사실을 굳이 강조해야 하던 때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지만, 일주일 전 우리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얼마든지 언론·출판의 자유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이가 21세기 민주공화국의 행정수반 자리에 앉아 있었음을 목도했다. 165년 전 영국 사상가의 말에 다시 귀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이한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나아가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명한 사람 치고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없다. 인간 지성의 본질에 비추어 볼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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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 | 노르웨이숲


대한민국은 ‘헌법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대통령의 헌정 파괴 행위로 국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고 헌법에 규정된 주권자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연일 거리로 나서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헌법의 소중함을 다시끔 절감하고 있다. <지금 다시, 헌법>은 헌법에 대해 알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부터 총강과 부칙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헌법 조문에 대한 주석을 쉽고 간결한 문체로 달아놓은 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졌던 2016년 출간돼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8년 만에 다시 소환됐다. 현재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선고 이후 변화들을 반영한 개정판이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현실의 힘은 헌법학자들의 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필요로 하는 각자의 해석과 주장이 만들어내는 희망 또는 울분에서 잉태된다. 그 힘이 헌법을 실현한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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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옹호함
버나드 크릭 지음 | 이관후 옮김 | 후마니타스


바람직한 정치란 무엇일까.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에 따르면 정치란 조정과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참주정이나 과두정은 정치가 아니라고 본다. “참주정이나 과두정의 통치 방식이란 간단히 말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또는 대부분의 다른 집단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강압하며,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통치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가능한 한 달래어 설득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며, 안전을 제공하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의사 표현의 수단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역자인 이관후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옮긴이의 글’에서 “이 책은 우리가 보통 ‘정치’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수준에서 무엇을 이해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면서 “(전공자들만이 아니라) 정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자 하는 보통의 사람들도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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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지음 | 곽준혁 옮김 | 후마니타스


오늘날 유권자들에게 익숙한 민주주의는 인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지만, 저자에 따르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원형이 등장한 그리스에서는 추첨이 민주적인 방식이었다. 선거는 소수 엘리트에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이유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민주주의 이론의 역사에서 주요한 사상가로 평가되는 몽테스키외는 추첨이 민주정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루소는 “(선거로 대표자를 뽑은 영국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라면서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책은 이처럼 비민주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선거가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 과정을 살핀다.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에 대한 실망감이 반복해서 쌓여가는 요즘, 선거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여러 각도에서 곱씹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원서는 1997년 출간됐다. 원제는 ‘대의정부의 기본원칙’(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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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작가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출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장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소설은 언어 장애를 앓는 소년 동구의 눈에 비친 1977~1981년 사이의 세상을 그린다. 인왕산 아래 동네에 사는 동구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1979년 10월27일 중앙청에 탱크가 배치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함께 중앙청으로 달려간다. 소년들에게 탱크란 “공룡이나 로봇처럼 한없이 매혹적이기는 하나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그런 존재”, “볼 기회는 오늘뿐”인 진기한 구경거리다. 하지만 아이들은 광화문 앞에서 만년 고시생인 주리 삼촌에게 붙들린다. “야, 순진한 놈들아. 너희는 어려서 참 좋겠다.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냐. 근데 이건 알아둬라. 세상에 안 쏘는 탱크는 없다. 탱크는 쏘자고 만드는 거다. 그걸 중앙청 앞에 가져다놓은 놈은 서울 사람들,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 다 잡아 죽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고 있는 거야.” 무구한 소년의 언어와 폭력적인 현실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아픔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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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희망
리베카 솔닛 지음 | 설준규 옮김 | 창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유명한 미국 사회운동가 리베카 솔닛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 쓴 책이다. 애초 온라인으로만 출판했으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종이책으로도 출간됐다. 솔닛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탄생과 네오콘(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한 신보수주의자 그룹)의 발호,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이라는 시대의 어둠에 맞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행동이 결여된 정치적 인식은 얼굴을 사태의 중심으로 향한 채 참담한 현실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행동은 그 자체로 희망을 생성할 수 있다. 행동은 이미 하나의 대안을 이루면서, 중심에 놓인 타락상에서 얼굴을 돌리고, 뜻밖의 가능성과 주변부나 우리 이웃에 존재하는 영웅을 마주하게 한다.” 그 행동이 비장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쁨은 운동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지탱해준다. 우리를 겁먹게 하고 소외시키고 고립시켜 드는 정치적 상황과 대면했을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은 항쟁의 근사한 첫 행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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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 김화영 옮김 | 책세상


<계엄령>은 알베르 카뮈가 1948년에 쓴 희곡이다. 배경은 스페인의 항구 도시 카디스. 하늘에서 혜성이 떨어지면서 ‘페스트’라는 이름의 독재자가 나타나 도시를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통행증 없이 공공장소에 머물거나 도로로 통행할 수 없다. 통행증은 자의적 결정에 따라 극소수에게만 발행한다. 조치를 위반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독재자는 “항상 솜을 입에 물고 다닐 것을 명령한다.” 공포가 도시를 휩쓸지만 시민들의 용기가 독재를 무너뜨린다. 카뮈는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사람만 공포를 극복하고 반항해도 기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카뮈의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다. 발표 이후 평단의 반응도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독재에 대한 우화라는 성격 덕분에 정치적 억압 상황이 닥칠 때 자주 호명되는 작품이다. 2017년 뉴욕에서 이 작품이 무대에 올랐을 때 뉴욕타임스는 “관객들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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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 한정림 옮김 | 정은문고


“번화가인 종로를 직진하던 버스는 이윽고 이순신 동상 앞에서 우회전해 널찍한 세종로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경비가 삼엄한 미국대사관, 정면으로 늘 그렇듯 광화문이 보인다. 문 너머가 중앙청이다. 버스가 세종로에 진입하는 순간, 그때까지 조용하던 차 안에서 일제히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황급히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도로에 넉 대의 탱크가 보였다. 탱크 한 대에 열 명씩 병사가 타서 사방으로 총을 겨누고 있다.” 일본의 영화사 연구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요모나 이누히코는 1979년 10월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상황을 2022년 펴낸 소설 <계엄>에서 이같이 묘사했다. 이누히코는 1979년 초부터 이듬해 초까지 1년 동안 건국대 강사로 한국에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방인의 눈에 비친 박정희 정권 말기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지난 10월 출간된 이 책은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출판사가 애초 예상하지 못했던 시의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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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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