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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한강 “한국 상황 끔찍하지 않아, 시민들 진심·용기에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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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일 노벨 위크 마지막 낭독 행사까지 마쳐

조선일보

12일 오후 7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 드라마 극장(Kungliga Dramatiska Teatern)에 들어서면 보이는 커다란 전광판. 이날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낭독회가 열렸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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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에 꽂힌 육체 같은 그 납작한 형상들과 뒤늦게 그것을 읽으려 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이질적인 것인지 그녀는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54)이 소설 ‘희랍어 시간’의 일부를 한국어로 낭독하자 객석 사방에서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행사 중 촬영 금지’라는 사전 공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두운 객석 곳곳에서 반딧불이들이 반짝였다.

12일 오후 7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 드라마 극장(Kungliga Dramatiska Teatern). 소설가 한강이 ‘노벨 위크(Nobel Week)’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낭독 행사에 참석했다. 1층부터 2~4층 발코니석까지 총 700석 객석이 가득 찼다. 표는 일찌감치 전석매진됐다.

스웨덴 현지에서 한강의 인기는 뜨겁다. 올해 3월 스웨덴에서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스웨덴 대형서점 체인 ‘애드리브리스’ 올해의 소설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현재 애드리브리스 사이트에서 소설 10편을 놓고 투표 중이다. ‘채식주의자’ ‘흰’ ‘소년이 온다’를 모두 읽었다는 스톡홀름 주민 휴 헤인(33)씨는 “어렵게 딱 한 표를 구했다.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 중에서 한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관례적으로 왕립 드라마 극장에서 낭독 행사를 한다. 이날 행사엔 스웨덴 문학평론가 크리스토퍼 리안도어, 작가 겸 저널리스트 유키코 듀크가 한강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각각 다른 연사들이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등 세 편을 스웨덴어로 낭독했다. 유키코 듀크가 한강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는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통역과 함께 자리한 한강은 영어 또는 한국어로 질문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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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각)스웨덴 스톡홀름 왕립 드라마 극장(Kungliga Dramatiska Teatern) 바깥의 전광판. 한강의 낭독 공연을 홍보하고 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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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질의응답 요약.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떠나는 것은 끔찍했을 것 같다.

“5일에 출국했는데… 그건 그렇고 굿 이브닝(좌중 웃음). 그 당시하고 지금하고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노벨 기간에 너무 많은 일들을 해야 하고 제대로 뉴스를 보지 못해서 상황을 정확하기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다. 시민들이 보여주는 어떤 진심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돌아가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당신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40여년 전에는 언론이 엄격하게 통제됐다. 지금은 모두가 휴대폰을 들어서 찍을 수 있고 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실시간으로 모든 상황이 공유되기 때문에 그런 점도 큰 차이였다고 생각이 된다. 젊은 세대 분들에게 광주로 가는 진입로 역할을 제 책이 조금 해줬을 수 있다. 제 책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과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소년이 온다’를 쓴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였던 때다. 그런 정치적 배경이 소설을 쓰게 된 것과 관련이 있나.

“이 책을 쓰게 된 데는 여러 가지 계기가 있다. 지금 말씀하신 것도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겠다. 내면적인 원인도 있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하고 다음 책을 쓰려고 할 때, 내면에서 어떤 저항이 느껴졌다. 세계를 더 강하게 껴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내면을 계속 타고 들어가 봤을 때 광주가 있었던 것이다.”

-소설 쓰는 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장편소설을 쓸 때는 질문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감각도 중요하고, 소설을 쓰는 시기에 저를 사로잡는 이미지도 중요하다. 프로세스가 단일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고, 최종적인 내러티브는 맨 나중에 온다. 질문과 감정·감각·이미지 그런 것들이 장면을 만들어가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맨 나중에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면 쓰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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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 시각) 낭독 행사를 마친 뒤 한강과 연사, 대담자가 모두 서서 인사를 하는 모습. 이를 끝으로 한강은 '노벨 위크'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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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로 한강이 ‘희랍어 시간’을 한국어로 낭독하기에 앞서 간단히 소설을 소개했다. ‘희랍어 시간’은 아직 스웨덴어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갑자기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듀크가 “이 소설에는 빛과 온기가 가득하다”고 하자 한강은 “내 유일한 사랑 이야기다(My only love story)”라고 덧붙였다.

낭독이 끝난 뒤 약 2분간 박수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강이 무대 위에서 행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머물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달려나와 사진을 찍고 사인을 요청했다.

[스톡홀름=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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