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미국 제약 대기업 길리어드의 에이즈 예방약 레나카파비르(제품명 선렌카)를 2024년 최고의 과학성과에 선정했다. 길리어드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새롭게 개발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약이 2024년 최고의 과학 성과로 꼽혔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1회 접종으로 6개월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막아주는 주사제 레나카파비르(lenacapavir)를 포함한 10가지 과학 성과를 올해의 혁신으로 선정했다고 13일 밝혔다. 레나카파비르는 미국 제약 대기업 길리어드가 개발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로, 제품명은 선렌카(Sunlenca)다. HIV 관련 약물이 올해의 과학성과로 선정된 것은 1996년, 2011년에 이어 세번째다. 이전의 두 약물은 모두 치료제였다.
홀든 소프 사이언스 편집장은 사설을 통해 "수십년간 발전에도 HIV는 매년 100만명 이상을 감염시키고 백신은 요원하지만 레나카파비르가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이 약은 아프리카 청소년 소녀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100%, 이후 4개 대륙에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는 99.9%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임상시험 결과대로라면 연 2회 접종으로 거의 완벽한 예방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사이언스는 많은 연구자들은 이제 이 약물이 예방용으로 사용될 때 전 세계 감염률을 강력하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HIV 바이러스의 구조. 길리어드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내년 중반 시판 승인될 듯
사이언스는 “이런 효과의 비결은 바이러스 유전물질을 감싸고 있는 캡시드 단백질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에서 비롯됐다”며 “레나카파비르의 성공으로 캡시드 구조를 갖고 있는 다른 바이러스 질환과도 싸울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레나카파비르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 RNA를 감싸고 있는 원뿔형 캡시드 단백질이 세포 안에 들어가서도 분해되지 않도록 해준다. 이렇게 되면 RNA가 밖으로 나오지 못해 바이러스 복제를 할 수 없다.
사이언스는 2025년 중반에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가격은 미정이다. 길리어드는 개발도상국을 위한 저가용 제품 생산을 위해 6개의 제네릭 제조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길리어드는 한 번의 주사로 1년 동안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개량 약물도 개발해 곧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강력한 적외선 관측력으로 빅뱅 후 수억년 이내의 우주 초기 은하들을 여럿 찾아냈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스타십의 로켓 ‘젓가락집기 회수’도 뽑혀
사이언스는 이와 함께 올해의 과학성과 9가지도 발표했다.
첫째는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등의 자가면역 질환 치료에서 큰 성과를 보인 키메라 항원 수용체 T(CAR-T)세포 치료법이다. 15년 전 혈액암 치료법으로 처음 등장한 치료법은 환자의 백혈구에서 면역세포인 티세포를 분리한 뒤, 또 다른 자가면역 질환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인 비(B)세포를 찾아 파괴하도록 유전자를 추가해 환자에게 다시 투여하는 것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통해, 천문학자들의 기대 이상으로 빅뱅 후 5억년 이내의 초기 은하를 잇따라 발견한 것도 올해의 성과로 꼽혔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관측 활동 첫해인 2022년에 최고의 과학 성과로 선정된 바 있다.
올해의 과학 성과를 발표한 12월13일치 사이언스 표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후·생물다양성·플라스틱협약은 실패 사례로
이밖에 다른 곤충을 해치지 않고 표적으로 삼은 해충만 퇴치하는 RNA 기반 살충제, 해조류에서 발견한 새로운 질소 고정 세포소기관, 새로운 유형의 자석 발견, 다세포 생물 출현시기를 16억년 전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미세조류 화석 발견, 판구조론에서 대륙을 형성하는 맨틀의 새로운 파동 발견,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엑스의 차세대 로켓 스타십의 젓가락집기 방식 로켓 회수 성공, 고대 DNA 분석을 통해 가족 관계를 밝혀낸 고인류학 성과도 올해의 혁신에 뽑혔다.
반면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엠폭스 감염 확산 등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되는 전염성 질환,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전쟁과 예산 삭감으로 인한 과학 연구 부문의 위축, 난관에 부딪힌 MMDA(합성 액상 대마) 치료법,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기후변화협정 및 생물다양성협약, 플라스틱협약 협상은 올해의 실패 사례로 꼽혔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