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광주, 고유명사 아닌 일반명사
문학 읽고 쓰는 일…생명 파괴 반대편에 있어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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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한다. 노벨 주간에 그가 했던 발언들은 최근 한국의 계엄 사태와 맞물려 국민을 위로하는 등 깊고 진한 울림을 전했다.
한강의 노벨 주간 공식 일정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열린 기증식이었다. 이날 한강은 제주 4·3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별하지 않는다' 집필 당시 사용한 작은 옥색 찻잔을 기증했다.
한강은 "하루에 몇 번씩 책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딱 그 잔만큼 홍차를 마셨다. 찻잔은 계속해서 저를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늘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산책하며, 방황하는 와중에 찻잔을 사용할 때만큼은 열심히 소설을 썼다는 것.
직후 열린 국내외 기자간담회에서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입장한 한강은 최근 한국의 계엄 사태와 관련해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言路)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서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에 관해 공부했다. 그는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다음 날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 집필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제목의 마지막 단어 '온다'는 동사 '오다'의 현재형이다. 소년, 즉 소년이 친밀하든 덜 친밀하든 2인칭으로, '당신'으로 불리는 순간, 그는 희미한 빛 속에서 깨어나 현재를 향해 걸어간다"라고 말했다.
한강은 이 소설을 연구하면서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두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이어 집필 과정에서 두 가지 질문이 각각 '과거가 현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등 정반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강은 "인간의 잔혹함과 존엄성이 극도로 평행하게 존재했던 시대와 장소를 '광주'라고 부를 때, 그 이름은 더는 한 도시에만 고유한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일반 명사가 된다"라고 전하며 이 소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전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해 왕족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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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주간의 꽃은 바로 시상식이었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한강은 스웨덴 왕실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한강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자 무대뿐만 아니라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손뼉을 치며 경의를 표했다.
시상식 직후 열린 연회에서 한강은 영어로 4분가량의 짧은 소감을 발표했다. 한강은 8살 때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던 날을 회상했다. 많은 아이가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맞은편 건물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강은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다"라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시상식 다음 날 한강은 한국 기자들을 따로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그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는 게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 글 쓰고 싶다"라고 전했다.
[이투데이/송석주 기자 (ssp@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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