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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근대 민족문학”의 뿌리를 찾아, 두 권 뒤 진짜 첫 책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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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울 수송동 창착과비평사의 편집실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평론가 염무웅(왼쪽부터), 창비 창간편집인 백낙청, 시인 조태일, 문학가 이오덕, 시인 이원수. 염무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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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창작과비평사, 1979)의 표지. 사진 염무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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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내가 근무하던 신구문화사에는 임종국 선생이 가끔 들렀다. 편집부 직원인 부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알고 보니 임종국 자신도 이 출판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의 부인은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많았지만 말이 잘 통해서 친하게 지냈고, 그러다 보니 임종국과도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자기 책의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초짜 평론가로서는 외람된 노릇이라 극구 사양했지만, 그는 젊은이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소설가 서기원의 서문과 내 서문이 함께 붙은 ‘친일문학론’(평화출판사, 1966)은 그렇게 나왔다. 한일협정 파동의 여진이 남아 있던 때라 이 책의 출간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고, 저자 임종국을 정신적 뿌리로 하여 그 후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는 지금도 친일 청산 문제에 가장 앞장서 활동하고 있다.



당시 나는 대학원 독문과 석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이 출판사에서 맡은 일 때문에 차츰 독문학보다 한국 근대문학 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신구문화사에서 발행한 ‘한국의 인간상’(1965), ‘현대한국문학전집’(1965~67), ‘한국인명대사전’(1967) 등 한국학 관련 작업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다소간 관여를 했고, 퇴직 후에도 ‘국어국문학사전’(1973)에 필진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월북 학자들의 중요성에 눈을 떠서 헌책방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지 싶다. ‘한용운 전집’(1973)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제자 최범술로부터 만해의 원고 뭉치를 받아오기도 했다.



소장 평론가로서 약간의 이름을 얻은 덕인지 이 무렵 나는 어느 여자대학 국문학과에 전임으로 취직이 되었다. 책상 앞에 앉을 시간을 더 얻은 셈인데, 이때 읽은 고정옥·이명선·전석담 등의 문체와 사고방식은 지금도 얼마쯤 내 안에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와 더불어 일제 식민사관의 극복 문제를 중심으로 한창 업적을 발표하던 이기백·김용섭·강만길 등의 저서와 논문에서도 큰 배움을 얻고 영향을 받았다. 마침 창비에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번역해오고 있었기에, 서양문학 공부와도 일맥상통하는 시야가 열릴 수 있었다.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을 받아들이는 것과 문학작품의 분석과 문학사의 해석을 통해 그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작업이었다. 1970년대의 시점에서 내가 설정한 이론적 목표는 우리 근대문학이 일제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를 지나는 동안 어떻게 훼손되고 상처를 입었는지, 그리고 그 손상을 극복하려는 민족 내부의 주체적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구시대의 봉건 잔재를 청산하고 자주적인 근대국가로서의 위상을 문학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나는 ‘근대적 민족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했다. 그 무렵 발표한 ‘근대문학과 항일의식’, ‘식민지시대 문학의 인식’, ‘민족문학관의 모색’ 같은 평론들은 대체로 그러한 과제에 관련된 것이었고, 또 그런 관점에서 한용운·염상섭·김정한·윤동주·김수영·박경리 등의 작품을 검토했다. 이 글들은 사실상의 내 첫 책이라 여기는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창작과비평사, 1979)에 묶여 있다.



그런데 1973년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에서는 ‘한국문학과 민족의식’이라는 주제로 고전문학부터 근대문학까지를 살펴보는 프로젝트를 정하여, 그 세번째 파트를 김용직 교수와 내게 맡겼다. 그리하여 일본강점기 시와 소설을 민족의식의 관점에서 개관한 책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김용직·염무웅 공저 ‘일제시대의 항일문학’(신구문화사, 1974)이다. 공저를 ‘나의 첫 책’이라 내놓기는 좀 멋쩍다. 한편, 1960년대부터 발표해오던 잡다한 성격의 평론들을 ‘한국문학의 반성’(민음사, 1976)이란 이름으로 모았다. ‘오늘의 산문 선집’ 중 한 권인데, 이 시리즈에는 서정주의 자서전을 비롯한 갖가지 책이 함께 있어 성격이 단일하지 않다. 거기 끼어 있는 내 평론집을 보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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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염무웅(83).






■ 그리고 다음 책들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박정희가 죽은 뒤 복직이 허용되자 나는 대구의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독문학 교수로 복귀하여 학위논문을 포함한 몇 편의 독문학 논문을 썼으나, 한국문학의 현재적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이 책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잃어버린 시대 즉 혼돈의 시대”에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문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모색한 기록이다. 단재상 평론부문 수상.



창작과비평사(1995)





문학과 시대현실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를 하나의 연속선 속에서 바라보면서 김팔봉·김광섭·박세영·임화 등의 활동과 신동문·고은·신경림·조태일 등의 업적을 분석하여 그들의 문학이 어떻게 자기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또 극복하고자 했는지 살폈다. 서양문학 전공자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비평에 종사하는 사람의 분열적 자아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대산문학상 평론부문 수상.



창비(2010)





살아 있는 과거



벽초의 장편소설 ‘임꺽정’을 비롯하여 염상섭과 박완서의 작품들을 통해 식민지, 분단, 전쟁의 고통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살피는 동시에 임화의 근대문학사 관계 논문을 바탕으로 이식문학론의 쟁점과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검토했다. 1923년 도쿄 대지진이 한국의 젊은 시인들에게 끼친 서로 다른 영향을 통해 일제 식민통치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하였다.



창비(2015)





문학과의 동행



이주영·김윤태·김용락·황규관·김수이·백지연·장성규 등의 후배 문인들이 묻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의 대담집이다. 1960~70년대 문단을 경험한 선배로서 당시의 문학적 성과를 회고한 내용도 있지만, 내가 어떤 경위로 문학평론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또 현재 우리 문단이 부딪친 문제점은 무엇이며 이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티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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