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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정태윤기자] 배우 서현진과 공유의 멜로. 말랑말랑하고 달콤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다 굵직한 로맨스 대표작을 가지고 있기 때문.
그러나 예상은 단번에 빗나갔다. 버석버석하고 말라비틀어진 감정. 애처롭고 위태롭다. 사랑의 밝은 부분이 아닌,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꺼냈다.
빡빡한 현실에 무게를 더하는 퍽퍽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시청자는 몇 없을 것. 대본을 폈을 때부터 이미 호불호는 예상했다. 심지어 상대를 받쳐주는 역할.
그래서 가장 궁금한 질문. '공유는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그는 단숨에 대답했다.
"이런 연기를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표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는 것 같아요. '정원'이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플까 궁금했고, 한 구석에 동질감도 느꼈습니다. 그 아픔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트렁크'를 향한, 그리고 공유에 대한 궁금증을 몇 가지 던졌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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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트렁크'였나?
'트렁크'(극본 박은영, 연출 김규태)는 미스터리 멜로다. 전 부인 이서연(정윤하 분)이 한정원(공유 분)에게 한시적 계약 결혼 서비스 'NM'을 제안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서연은 정원과 거리를 둠으로써, 더 완벽하게 통제하고자 했다. 정원은 NM 직원 노인지(서현진 분)와 계약 결혼을 맺게 된다. 그러나 서연의 예상과 달리, 둘은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공유와 서현진은 달콤한 케미 대신, 버석한 얼굴을 꺼냈다. 멜로를 표방한, 비틀린 관계를 풀어냈다. 3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으로도 다소 무겁다.
그가 '트렁크'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대부분의 멜로는 연애의 밝은 부분, 판타지스러운 면에 집중한다"며 "반대로 어두운 것도 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정원의 아픔에 공감했다. 정원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안고 자랐다. 심지어 서연에게 다년간 가스라이팅도 당한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떤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어른 같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아픔이 있잖아요. 정원의 아픔에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얘는 왜 이렇게 힘들게 말라비틀어진 채로 살까. 궁금해서 연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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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받쳐주는 역할?
정원의 존재는 원작 소설에선 미미한 수준이다. 드라마로 각색되며 그의 이야기가 확장됐다. 투톱을 모방하지만, 결국엔 인지가 주인공이다.
공유는 원래 원톱만 고집하지 않았다. 일례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지영(정유미 분)의 이야기였고, '원더랜드'와 '오징어 게임'에선 메신저 역할을 자처했다.
타이틀롤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그는 "전혀 없다. 심지어 '트렁크'는 투톱도 아니다. 두 여자, 인지와 서연의 이야기가 더 크다. 정원은 그 중간에 끼어있다"고 강조했다.
"제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본의 타이틀롤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 작품 이야기를 해도 신나지 않고 불편해요. 내가 진짜로 느낀 걸 말해야 마음이 편하죠. 지어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공유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표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진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 깊게 느껴보고 싶은 감정을 따라 선택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트렁크'가 제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네가 믿는 사랑은 뭐야?'라고 질문하는 것 같았어요. 정원으로 살고 나니, 비로소 제가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원래 지향했던 관계나 사랑에 대해 곱씹어보며 저를 다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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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진이 아닌 노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서현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현진이 아닌 노인지는 상상이 안 된다. 하면서도 느꼈고, 다 끝내놓고도 다시 한번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현진이 왜 살이 안 찌는지 알겠더군요. 정말 지독하게 해요. 제가 막연하게 생각한 점도 굉장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연기하는 배우였습니다. 덕분에 영감도 받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가 서현진에게 가장 충격받았던 연기는 2회. 인지는 과거 파혼한 적이 있다. 인지의 어머니가 예비신랑(이기우 분)을 강제 아웃팅한 것.
예비신랑을 사회적 죽음에 이르게 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무리하게 끌고 가려 했던 자신의 폭력적인 사랑. 그 죄책감과 절망감에 오열한다.
이때 그의 앙상한 경추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바짝 세운 모습.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날을 세워 살아온, 그 내면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다
"감정적으로 큰 신인데, 어떻게 찍을지 궁금했습니다. 감독님께 부탁해서 미리 봤는데, '지독하게 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죠. 대사 없이 이미지만으로 인지의 아픔을 표현한 게,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감독님께 예고편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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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가 왜?
데뷔한 지 23년. 예상되는 행보만 걷지 않았다. '도깨비', '부산행', '밀정' 등을 연달아 흥행시킨 지난 2016년. 노를 젓는 대신, 공백기를 선택했다.
3년의 휴식 끝에 돌아온 작품은 '82년생 김지영'. 젠더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캐스팅 때부터 잡음이 있었다. 누군가는 '공유가 왜?'라고 물었지만,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말했다.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좇지 않습니다. '남과 여' 같은 경우는 처참한 성적을 냈지만, 제 필모그래피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고요. 어릴 때부터 생각한 배우라는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보낸 23년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하고 싶은 말이 명확했다. 흥행을 좇는 것이 아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이전의 공유는 판타지를 연기했다면, 이제는 인간 공지철에 가까운 연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제 그 어떤 평가에도 자유롭다.
"배우 공유와 인간 공지철의 간극을 최대한 줄여가고 싶습니다. 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핑계고' 보세요. 전 그냥 그런 사람입니다.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도 좋고요. 하나의 미장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너무 다양한 관점이 있잖아요.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가 닿는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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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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