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 반 도마엘 연출 서면인터뷰
‘제8요일’ 등 세계적인 영화감독
연극·무용·영화 만나 ‘일회성 영화’
13~14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
영화 ‘토토의 천국’(1991)으로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받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 자코 반 도마엘 감독과 미셸 안느 드 메이가 총체극 ‘콜드 블러드’로 한국을 찾는다. [Julien Lambert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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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대 위엔 또 하나의 무대가 존재했다. 대형 스크린 아래 자리한 본 무대는 영화 촬영을 시작한 것처럼 분주하다. 컨베이어 벨트 위를 이동하는 카메라는 무대 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미니어처 무대로 향한다. 이곳에선 손가락이 춤을 춘다. 두 명의 무용수가 오로지 검지와 중지만을 이용해 보여주는 ‘나노 댄스’. 춤은 삶과 죽음을 담는다. 영화 ‘토토의 천국’(1991)으로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받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의 총체극 ‘콜드 블러드’다.
이상한 경험이다. 관객은 지금까지 봐았던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과 무대를 마주한다. 공연은 공감각을 자극하고, 선택적 감상을 독려한다. 무대로는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장면이 촬영되는 제작 과정을, 대형 화면에선 미니어처 무대의 공연 장면을 볼 수 있다.
도마엘 감독은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형태의 이 공연의 포맷은 ‘일회성 영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고 했다.
“사전 녹화 없이 모든 촬영이 실시간으로 관객들 눈앞에서 이뤄져요. 유일한 기록장치는 현장 관객들의 기억 뿐이에요. 이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제작 과정과 스크린에 투사된 최종 결과물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경이로운 결과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마술과도 같아요.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두 개의 눈을 가지게 됩니다. 무엇이든 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죠.”
2010년대 이후 유럽 공연계를 중심으로 연극,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무대와 영상을 결합한 형태의 공연이 늘었다. 1990년대 영화 데뷔작으로 칸을 휩쓸고 ‘제8요일’(1996)로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도마엘 감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일명 ‘라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영화적 경험을 연극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것을 즐긴다”며 “두 장르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보통 영화 작업을 마치면 공연을 하고 싶어지고, 공연을 마치면 영화를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영화 ‘토토의 천국’(1991)으로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받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 자코 반 도마엘 감독과 미셸 안느 드 메이가 총체극 ‘콜드 블러드’로 한국을 찾는다. [Julien Lambert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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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프로젝트’ 작업은 작품의 메시지를 선명히 드러내면서도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공연장을 생생한 현실로 치환한다. 도마엘 감독은 “관객들은 무대에 보이는 것 자체를 실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실제라고 믿고 싶어 한다”면서 “그 지점에서 마법 같은 일들이 작용한다. 관객들이 발휘하는 상상력이 공연 세트를 실제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말했다.
‘콜드 블러드’는 도마엘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느 드 메이가 함께 이끄는 벨기에 창작집단 ‘키스 앤 크라이 콜렉티브’의 작품이다. 부부는 2011년 처음 협업, ‘콜드 블러드’의 전작 격인 ‘키스 앤 크라이’를 만들었다. 벨기에의 유명 작가 토마 귄지그의 동명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영화와 무용·연극·문학이 어우러진 총체극이다. 이 공연을 통해 ‘손가락 춤’이 처음 등장했다. 한국에서 2014년 공연됐다. ‘콜드 블러드’에서도 세 사람이 함께 했다.
네 개의 손가락이 추는 ‘나노 댄스’는 상징적이다. ‘손가락 춤’은 평범한 일상 안에서 태어났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 촬영을 마친 이후, 드 메이와 주방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아이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오로지 손가락만으로 춤을 추면서 실시간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다 즉흥극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손가락은 우리 몸의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신체이자, 거울 없이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신체기관이죠. 아무런 의복도 입지 않은 채 오로지 피부 그 자체로 존재하고, 그 피부는 매우 섬세해요. 사람, 동물, 새가 되기도 하며 그 형태를 변화시켜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특별해요.”
정해진 안무는 하나도 없다. 벨기에 현대무용의 전설로 꼽히는 ‘모사스 무용단’의 창립 멤버인 미셸 안느 드 메이는 45년 동안 춤을 췄지만, 손가락으로 춤을 추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영화 ‘토토의 천국’(1991)으로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받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 자코 반 도마엘 감독과 미셸 안느 드 메이가 총체극 ‘콜드 블러드’로 한국을 찾는다. [Julien Lambert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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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블러드’는 도마엘 감독과 드 메이 안무가, 토마 귄지그 작가의 공동작업이다. 도마엘 감독은 “이 프로젝트는 팀원 모두가 자신의 욕망과 아이디어를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탐구하는 집단적 실험으로 시작된다”며 “그 과정을 거쳐 주제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영화와 달리 총 작업 기간의 마지막에 이르러야 대본이 만들어진다. “그간 만들어낸 장면들과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낸다”는 설명이다. 그런 뒤 내레이션을 입힌다. 한국 공연에선 배우 유지태가 맡았다. 도마엘 감독은 “극의 내용은 차가운 풍자인데,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워 극명한 대조가 일어난다”고 했다.
작품은 ‘삶과 죽음’을 다룬다. 도마엘 감독은 “관객들은 이 공연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는 7번의 죽음과 7번의 재탄생을 간접 체험한다”고 했다. 도마엘 감독과 드 메이 안무가가 창작 단계에서 나누던 아이디어는 언제나 죽음으로 향했다. 특히 ‘어리석은 죽음, 의미없는 죽음, 예상치 못한 죽음’이라는 공통의 주제와 마주하게 됐다. 아이디어는 비행기의 추락, 교통사고와 같은 장면으로도 태어났다.
“어느 순간 죽음은 다가오고, 마지막 순간 이전의 삶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돼요. 그것이 공연에서 블랙코미디적인 측면을 드러나게 하고 관객들은 일종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매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죠. 공연이 끝나면 다시 건강한 상태로 공연장을 나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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