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50주년 기자회견. 왼쪽부터 신지영 아동문학가, 박소란 시인, 오창은 교수, 염무웅 문학평론가, 현기영 소설가, 한국작가회의 김대현 비상대책위원장, 안주철 사무처장.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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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동포들이 빈곤과 압제에 시달리며 민족의 존망 자체가 위태로운 이 시기를 맞이하여 문학인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만은 없다.”
“우리의 주장은 어떠한 형태의 당리당략에도 이용되어서는 안 될 문학자적 순수성의 발로이며, 또한 어떠한 탄압 속에서도 계속될 인간 본연의 진실한 외침이다.”
지금 당장 터져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선언이 쏟아진 때는 1974년 1월이요, 11월이다. 서슬 퍼런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문인 61인의 개헌지지 선언’(1월7일)에 이어, 간첩으로 내몰린 문인들 석방을 요구하는 ‘문학인 101인 선언’(11월18일)을 계기로 한국작가회의(아래 작가회의)가 태동한 지 올해 말로 50주년을 맞았다. 공교롭게 작가들은 여태 투쟁 중이다. 이어 외친다.
“2024년 12월3일, 또다시 우리의 밤이 침탈당했습니다. (…) 가장 어두운 순간으로부터 가장 찬란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고, 우리를 기다리며, 지친 우리가 일어설 때까지 지켜보는 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 작가들은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밤의 평화를 위해 글을 쓸 것입니다.”(‘2024 작가선언’)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가회의는 현 시국에 따른 ‘민주주의 작가 실천 운동’과 ‘한국작가회의 50주년 기념행사’ 계획을 내놓았다. ‘2024 작가선언’과 함께, 윤석열의 하야 또는 탄핵 가결까지 성명 및 집회 활동을 이어가고, 국민의힘 해체, 유인촌 담화 관련 문체부 즉각 수사 등을 촉구할 방침이다.
반세기 전 문인 61인 개헌지지 선언문을 작성했던 평론가 염무웅(83)은 이날 “작가가 골방에서 창작하지 못하게 하고 길거리로 끌어내는 이 현실이 안타깝다”면서도 “완전한 민주주의는 없다. 삶이, 문학이 그렇다. 문학은 정점이 없는 작업이다. 정점에 이르렀다 할 때 추락하게 되고, 민주주의도 완성됐다 싶을 때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한순간도 방심 말고 건강한 삶, 민주주의를 지키는 조직으로 작가회의가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13일 기자회견에서 염무웅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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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공식 기념 행사는 22일 낮 3시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열린다. 내일의한국작가상 시상식, 한국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당시의 ‘회고와 전망’, 한국작가회의 50대 사건 영상전, 2024 작가선언, 기념 공연 등이 펼쳐진다. 앞선 21일부터 1박2일 전국작가대회가 서울 강서구 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된다. ‘더 멀리 가는 문학―문학은 작별하지 않는다’ 제목의 문학 심포지엄(21일 낮 1시)으로 시작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살피는 시간이다.
작가회의는 이날 “12·3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위법 행위로서 국헌을 어지럽히고 국민의 대량 학살을 기도한 내란 행위”라며 “하야 또는 탄핵소추에 따른 즉각적인 대통령 직무정지” 및 “윤석열과 내란에 가담한 국무위원, 국회의원, 군부 등 공범들에 대한 특검에 따른 구속수사 개시”를 요구하고 나섰다.
소설가 현기영(83)은 “지금 작가들을 절망시킨 세태는 모든 중요 가치가 희석될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화되어 왔다는 것인데 윤석열의 그 가운데 형편없고 치졸한, 망발 망동이 젊은이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며 “작가들도 이런 시국에 좌절하고 정색만 할 게 아니라 풍자와 익살의 문학적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13일 기자회견에서 현기영 소설가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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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회의는 “시대를 위로하는” ‘문학인 308인의 308문장’도 기념 행사 때 공개한다. ‘생명, 연대, 평화, 민주주의, 문학’을 주제로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택일한 308개 구문이 수집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포함됐다. “이 밤, 이 비의 소곤거림은/ 혹시/ 이젠 외쳐야 된다는 말일까”(김정환 시인), “전쟁과 폭력으로 이룩되는 평화는 없다. 오직 평화만이 평화를 낳을 수 있다”(현기영) 등 문학적 주술이 밤새도록 이어질 법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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