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누볐던 송길용씨의 살아 생전 모습.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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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 시각) ‘한국에서 실종된 딸을 25년간 찾아 헤매던 한 아버지’라며 고(故) 송길용(71)씨 사연을 소개했다. 송씨는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전국에 붙이며 딸을 찾아다니다가 지난 8월 교통사고로 숨진 인물이다.
NYT는 이날 ‘그의 딸은 1999년에 실종됐다. 그는 딸을 놓을 수 없었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송씨에 대해 “변함없는 부모의 헌신을 상징하는 비극적 국가적 상징이 됐다”고 표현하며 그와 그의 가족이 딸 실종 이후 겪었던 이야기를 8177자 분량으로 집중 조명했다.
송씨의 둘째 딸 송혜희(당시 17세)씨는 1999년 2월 13일 고3 진학을 앞두고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당시 초동수사에서 딸이 버스에서 내릴 때 낯선 30대 남자가 뒤따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해당 정류장은 논밭과 야산뿐인 지역이었고 인근에 감시 카메라도 없었다.
용의자 추적에 진척이 없자 송씨 부부는 직접 전단을 들고 딸을 찾아 나섰다. NYT는 “딸이 사라진 후 송씨 부부는 딸을 찾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고 했다.
실종된 송혜희 씨를 찾는 전단. /X(옛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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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는 벌여뒀던 사업을 처분했고 모아둔 돈을 죄 털어 현수막과 전단을 구매했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혔다. 가로수와 전봇대에 그것을 내걸고 뿌리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전국의 아동 보호 시설도 수소문했다. 끼니는 소주와 담배, 라면으로 때웠다.
경찰 수사는 2004년 종결됐지만, 부부의 딸 찾기는 계속됐다. NYT는 “이 현수막으로 송씨는 한국에서 부모의 헌신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개인적인 대가를 치렀다”고 했다. 송씨 아내는 우울증을 앓다 200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의 죽음 뒤 송씨도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빠가 죽으면 나도 고아가 된다”는 큰딸의 말에 마음을 돌렸다.
송씨는 홀로 딸을 계속 찾아 나섰다. 현수막과 전단을 실은 트럭을 새벽에 몰고 나갔고 해가 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배를 타고 외딴섬으로 들어가 현수막을 걸고 전단을 뿌릴 때도 있었다. ‘혹시 혜희가 그곳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송씨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골판지나 폐품을 팔아 번 돈으로 딸 찾는 데 드는 비용을 댔다. 그러는 새 송씨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평택에서 현수막 공장을 운영하며 송씨를 위해 1000개가 넘는 현수막을 만들어준 마명낙씨는 “(송씨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했다.
딸 혜희씨의 납치 혹은 인신매매 공소시효는 2014년 2월 끝났다. 큰딸은 아버지 송씨를 만류했다. 2018년 자신이 아버지에게 빌려준 트럭을 폐차했다. 아버지의 자멸적인 집착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송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익명의 기부자에게서 받은 돈으로 새 트럭을 샀다. 큰딸과는 관계가 소원해졌다.
송혜희 아버지 故 송길용씨 분향소. /구아모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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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가 25년간 뿌린 전단은 1000만장가량, 현수막도 1만장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송씨는 1t 트럭에 현수막과 전단을 싣고 100만㎞가량을 주행했다. 그는 2020년 언론 인터뷰에서 “딸을 찾으려 전단을 돌리고 현수막을 거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며 “강박관념처럼 보이더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송씨는 지난 8월 코로나로 병원을 오갔고 심장 수술도 받았다. 같은 달 26일 정오쯤에는 평택의 한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 심장마비 증세가 나타났고, 중앙선 너머로 트럭을 몰던 송씨는 마주오던 트럭과 충돌해 숨졌다. 이날도 딸을 찾는 현수막을 달러 가는 길이었다.
아버지 송씨가 숨진 뒤 전국 곳곳에 걸려 있던 현수막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은 여전히 곳곳에 내걸리고 있다. 송씨에게 ‘혜희를 계속 찾겠다’고 약속한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은 그가 채 못 걸고 남겨둔 현수막을 계속 걸 계획이라고 NYT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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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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