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수미/사진=헤럴드POP DB |
배우 故 김수미의 일생을 담은 일기가 출간되며 눈길을 모으고 있다.
지난 12일 김수미가 1983년 30대부터 사망 직전 말년까지 써내려간 일기가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故 김수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한 고뇌와 철학은 물론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하던 회사와 분쟁을 겪으며 느낀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모두 써내려갔다. 고인은 아들인 정명호 씨와 함께 나팔꽃 F&B를 설립해 식품사업을 펼쳤으나 여러 소송에 휘말렸고, 회사 측은 당시 대표이던 정명호 씨를 해임한 뒤 김수미와 함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출판사 측은 일기의 내용을 덜어내거나 자르지 않고 그대로 엮고자 했다고 밝혔다. 책 말미에 자필 탄원서 전문도 실렸다. 故 김수미는 여기에서 "젊은 나이에 전원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할머니인 일용엄니로 나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진짜 할머니가 됐는데도, 노 배우로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며 "그런 와중에 피고에게 아무 의심 없이 회사의 운명을 맡겼고 어련히 잘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믿고 있다가 결국 오늘 같은 사태를 맞고 말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동안 피고는 저희 모자에게 고소 취하를 계속 요구하면서 안해주면 언론에 망신을 주겠다고 협박을 해왔다"며 "거부하자 결국 이틀 전에 저희 모자를 맞고소하고 즉시 언론에 제보하여 거의 모든 언론에서 김수미 횡령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 글을 쓰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배우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공인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에 늘 조심하고 참고 견디고 바보 같은 생활을 해왔다", "드라마 속 일용엄니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역할이지만 김수미 본인은 그러나 양아들이라 어머니, 어머니 하고 따르던 피고로부터 이런 일을 당하고 이런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 모두 제 못난 탓이다 한탄만 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고인은 "제 목숨과도 같은 연기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기로에 선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연기 생활 내내 함께 일하는 감독, 스태프, 동료들에게 음식을 해주는 걸 큰 낙으로 삼다가 하도 맛있다 맛있다 하여 내친 김에 시작한 김치 사업이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이 일로 제가 연예인으로서 받은 타격은 물론이고 회사 임직원들이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고 간절함을 표현했다.
고인이 말년에 겪은 공황장애와 법적 분쟁의 고통을 일기에서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김수미는 "효림이랑 명호가 왔었다. 효림이가 울더란다. 시어머닐 떠나 선생님인 김수미가 이렇게 무너져버린 모습을 보고. 정신과 약을 이틀째 먹지 않고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일단 고소 사건은 합의를 봤다", "연예인이라 제대로 싸울 수 없어 억울하지만, 한숨은 돌릴 수 있으니.."라고 적었다.
올 10월 1일 마지막 일기에는 "우리 손주만 생각해서 약 끊어야 한다. 주님, 도와주세요. 아멘. 발음이 이상하고 음식 먹을 때 흘리고 손을 떤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이러한 고통을 곁에서 지켜봤던 유가족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기를 공개하기로 했다며 인세는 전액 기부한다고 밝혔다.
한편 故 김수미는 지난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해 '전원일기'의 '일용 엄마'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50년 넘게 연기 생활을 이었다. 고인은 지난 10월 25일 향년 75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고혈당 쇼크에 따른 심정지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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