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87조 3호’ 적용 어디까지
윤석열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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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경찰 등의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계엄 준비·선포·작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용의 선상에 오를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특히 지난 3일 계엄 선포안을 심의한 심야 국무회의 참석자들의 사법 처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사전에 계엄 계획도 알지 못했고 국무회의에서 반대 의사 또는 우려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형법은 내란 모의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동조한 이른바 ‘부화수행(附和隨行)’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 여하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정부·여당 인사들에게도 화(禍)가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형법 제87조에 규정된 내란죄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우두머리(내란 수괴) △모의 참여·지휘 등 중요 임무 종사자 △부화수행·단순 관여로 구분해서 처벌한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김용현 전 장관을 구속하면서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를 적용했다. 이는 내란 우두머리는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으로 본다는 뜻이다. 김 전 장관 말고도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 비상계엄 작전 지휘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사람들도 중요 임무 종사자로 처벌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번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부화수행자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선 지난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계엄 심의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부화수행 혐의자에 해당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안을 심의하기 위해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한 정부 요인들이 위헌·위법적인 계엄이라고 인식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면 부화수행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화수행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에 처한다.
3일 밤 국무회의 참석자는 한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 11명이다.
그래픽=백형선 |
앞선 국회 현안 질의에서 한 총리는 “당시 참석했던 국무위원 모두가 반대 또는 우려했다”면서도 “그러나 결과적으로 계엄을 막지 못했다”고 했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대통령 앞에서 명시적으로 반대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하자 최상목 부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두 사람만 손을 치켜올렸다. 경찰 수사본부는 당시 국무회의 참석자 11명에게 출석을 통보한 상태다. 현재 20명인 국무위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수사 대상에 오른 셈이다. 내란 목적을 모른 채 명령에 따라 움직인 사병이나 경찰에까지 부화수행 혐의가 적용된다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내란죄는 공범 범위가 상당히 넓고 수십~수백 명까지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며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 당시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면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윤 대통령의 내란 시도에 부화수행했다고 공격하고 있다.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이 여당 의원들을 당사로 소집,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방해한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난 6일 민주당 이태형 법률위원장은 “애초 추 의원을 부화수행 혐의로 고발하려 했지만, 비상계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아 부화수행죄에 한정하지 않고 내란죄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 총리 등이 계엄 심의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발동을 막지 못한 정치적 책임은 있지만, 이들에게 내란죄에 해당하는 부화뇌동 혐의를 적용하는 건 지나치다는 말도 나온다. 이들이 안건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심야에 국무회의에 소집됐고,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만이 행사할 수 있는 비상대권(大權)이란 점에서 국무위원들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이상 내란 동조자로 처벌하는 건 무리라는 주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무위원 절반 이상이 부화수행자로 처벌될 경우 정부가 사실상 식물화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반(反)독재 시위 가담자가 부화수행 혐의로 처벌받기도 했다.
☞부화수행(附和隨行)
형법 87조 내란죄에 명시된 법률 용어로 ‘내란 모의에서 줏대 없이 다른 사람의 주장에 따라 행동했다’는 뜻이다. 내란죄는 △우두머리(1호)△모의·참여·지휘(2호)뿐만 아니라 △부화수행·단순 관여(3호)까지 모두 처벌한다. 부화수행·단순 관여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법조계에선 “내란죄는 공범의 범위가 넓어, 비상계엄 당시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면 ‘부화수행 피의자’로 전환될 공산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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