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해 정원작가와 소쇄원을 걷다
전남 담양군 소쇄원 전경. 조선의 문신 소쇄공 양산보(1503∼1557)가 스승 조광조의 몰락을 목격하고 낙향해 조성한 별서정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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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혼란하다. 정원은 소음 속 고요라고 했던가. 전남 담양군 소쇄원 입구의 대숲을 지나는데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난데없는 활극이 국민에게 안겨준 충격은 컸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별서정원인 소쇄원에 들어섰다고 해서 불안감이 일순간 사라지지는 않았다.
“황지해 작가와 소쇄원을 거닐면서 정원 얘기를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7일 소쇄원을 찾은 건 최근 미국 뉴욕한국문화원의 한국정원 조성을 도운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측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세계적 정원박람회인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지리산 약초군락지를 정원으로 연출해 금상을 받은 황지해 작가(48)가 올해 10월 뉴욕한국문화원에 소쇄원 애양단(愛陽壇)을 재현한 정원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폭설로 한 번 미룬 소쇄원 방문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철도 파업,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의 혼란 속에서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공교롭게도 1차 탄핵소추안 표결과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이 예정된 날이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 황 작가의 ‘지프 랭글러’에 올라타 함께 소쇄원으로 향했다. 그는 “소쇄원은 이렇게 조바심 안고 찾아올 곳이 아닌데요. 나중에 편한 마음으로 꼭 다시 오세요”라고 했다.
그는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환경미술을 전공한 뒤 국내 조경 현장에서 일하다가 영국에 가자마자 첼시 플라워 쇼에서 2011, 2012년 연속 수상했다. 그는 “학창 시절 다니던 화실이 광주동부경찰서 앞이라 늘 최루탄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며 “지금도 머리가 복잡할 때 모든 걸 내려놓으러 가는 곳이 소쇄원”이라고 했다.
● “공정하게 햇살을 누리는 곳”
소쇄원 애양단 앞에 선 황지해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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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하수상해도 소쇄원에는 따뜻한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특히 애양단은 소쇄원에서도 볕이 특별히 좋은 자리에 놓인 2.7m 높이 담장이다. 하늘과 소통하며 따뜻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 담장 사이로 제비꽃과 고사리가 핀다.
황 작가가 말했다. “빗물은 미네랄이 풍부해 식물에 좋은 영양제예요. 빗물이 스며드는 흙담장이 식물과 곤충을 먹여 살리죠. 담장 자체는 인간이 의도해 만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체들이 어우러지는 의도하지 않은 예술이 됐어요.” 애양단 앞에는 종손들이 심은 동백나무도 있다. 정유재란 때 불타 소실되기 전의 소쇄원 모습을 담은 1755년 목판 제작본 소쇄원도(瀟灑園圖)를 참고해 심었다.
소쇄원은 조선의 문신 소쇄공 양산보(1503∼1557)가 열일곱 되던 해 스승 조광조의 몰락을 목격하고 낙향해 조성한 한국 별서정원의 정수다. 별서(別墅)는 집과 떨어진 곳에 별도로 만든 거처라는 뜻이다. 양산보 당대뿐 아니라 이후에도 송순, 김인후, 김윤제 등 문인들이 찾아와 교유했다.
15대 종손 양재혁 소쇄원장(56)에게서 들어보니 양산보가 중시한 ‘애양(愛陽)’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공정한 햇살을 누린다는 뜻과 함께 부모를 따뜻하게 봉양하는 효심과도 연결돼 있었다. “소쇄공(양산보)이 볕이 따뜻한 애양단에서 촘촘한 참빗으로 노모의 머리를 빗어 이를 잡아 드렸어요.”
● 뉴욕에 재현된 소쇄원 애양단
황 작가가 애양단을 재현해 조성한 미국 뉴욕한국문화원 정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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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뉴욕 맨해튼 32번가로 이전한 뉴욕한국문화원은 10월엔 2층 전시실의 야외 테라스에 애양단을 설치해 공개했다. 올해 초 미국을 방문한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김천수 뉴욕한국문화원장을 만났을 때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시킨 전남의 정원을 뉴욕에 조성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게 시작이었다.
이 한국정원의 명칭은 ‘애양단: 태양을 사랑하는 단(壇)-1만1000km’이다. 가로 16.5m, 세로 6m 공간(약 99㎡)을 소쇄원의 원림적 특성으로 꾸몄다. 전통 기와로 애양단의 흙담장을 재현하고 씨앗독과 우물, 석등 등으로 한국인의 삶을 녹여냈다. 한국 특산식물인 노각나무와 미스김라일락을 비롯해 선비의 청렴을 상징하는 배롱나무, 만병초, 치자나무, 꽃댕강나무 등 한국의 산야에 자생하는 식물들을 미국 현지에서 힘겹게 구해 심었다. 문화원 담장의 표지석은 소쇄원 애양단 글씨를 그대로 본떴다.
황 작가가 소쇄원 애양단 앞에 서서 말했다. “여기 담장에 핀 고사리가 뉴욕 담장에 심은 고사리의 엄마인 셈이죠. 애양단 담장 길이는 20m도 안 되지만 이곳으로부터 뉴욕한국문화원 담장까지 거리는 1만1000km예요. 세상에서 가장 긴 생태 담장이죠. 버나큘러(vernacular·토착의) 관점에서 접근한 초현실주의 정원이라고 할까요.”
● 한국 별서정원의 아름다움
소쇄원의 제월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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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은 초행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야 제월당 앞마당에 놓인 돌들을 인식하게 됐다. 뾰족한 산의 모형 같은 돌도 있고, 옛 선비들이 딛고 올라서 하늘의 별을 관찰했다는 평평한 돌도 있다. 정원은 만드는 사람의 의중만큼 감상하는 사람의 미적 관심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제월당 마루에 앉으니 어느새 구름이 가려 달처럼 빛의 결이 은은해진 해를 직면할 수 있었다. 밤에는 이곳에서 달의 이동을 내내 지켜볼 수 있다고 한다. 마루에는 주먹 크기로 파인 부분도 있었다. 글을 쓸 때 붓을 물에 헹구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하니 마루의 지형마저 일상에 활용한 지혜다.
소쇄원은 땅의 특질을 읽어내 기존 지형에 맞춰 공간과 구도를 적용했다. 계류는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소쇄(瀟灑)는 맑을 소(瀟)에 뿌릴 쇄(灑)다. 당쟁과 사화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선비들은 광풍각에 올라 온몸으로 물을 감각하며 마음의 상처를 닦았다.
기후 변화의 위기감은 소쇄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봄에 피는 철쭉을 비롯해 홍매를 닮은 서부해당화도 12월에 피어 있었다. 오곡문 앞 우물 속에 핀 봉의꼬리, 담장에 핀 새박과 기와에 낀 이끼, 어릴 때 배가 아프면 우리네 할머니들이 빻아 준 질경이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소쇄원에 핀 길마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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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작가가 가리켰다. “어머, 저기 길마가지가 폈어요. 이른 봄에 피는 보기 힘든 우리 야생화인데 운이 좋으시네요. 꼭 향을 맡아봐야 해요.” 이따금 언어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처음 만난 길마가지 향기가 그랬다. 맑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그 속에 내내 파묻히고 싶은 은은한 향기…. 나중에 서울로 돌아와서야 알았다. 소쇄원 길마가지 향기 속에 머무를 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시름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그날 밤 한강 소설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인근 별서정원>
①환벽당=‘푸름을 사방에 가득 둘렀다’는 뜻으로 김윤제(1501∼1572)가 세운 정자. 나주 목사 등을 지낸 김윤제가 벼슬을 그만두고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정철이 벼슬길에 나아가기까지 머무르며 공부했다고 한다. 송시열이 쓴 ‘환벽당’ 글씨가 있다.
②취가정=임진왜란 때 조선 의병 총지휘관이었던 충장공 김덕령 장군(1568∼1596)의 혼을 위로하고 충정을 기리려고 후손들이 세운 정자. 6·25전쟁 때 불탔다가 1955년 재건했다. 정자 앞 빨간 단풍이 유독 곱다.
글·사진 담양=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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