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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엄마, 이제 못 보는 거냐'던 그날 밤 [초선의원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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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출입문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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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화요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나서 쉬려고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메시지가 왔다. "비상계엄 선포." 이게 무슨 말이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뉴스 클립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여러 의원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당장 국회로 모여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서둘러 국회로 출발했다.

국회에 도착했을 때, 국회 문은 닫혀 있었고, 경찰들은 모든 문을 막고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국회 담장을 돌면서 넘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나 경찰이 보초를 서며 지키고 있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초조해졌다. 담을 넘으려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보좌관들과 시민들이 모여들어 나를 국회 담장 위로 밀어 올렸다. 간신히 국회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무릎과 발목에 상처를 입었다. 국회 본청 가까이 가니 많은 사람이 모여서 "군대가 들어오려고 해요"라며 가구와 집기로 문 안쪽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쌓인 가구들 틈을 간신히 통과해 본회의장에 들어가니, 다른 의원들도 모여들었다.

유튜브 화면에는 군인들이 본청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모습, 보좌관들이 군인들을 막고 있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나왔다. 의원들은 빨리 계엄해제 표결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위급한 상황이 실감 나면서 불안이 엄습했다. 다행히 표결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계엄은 해제되었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비상상황은 진행 중이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은 민주주의는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열정과 노력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 앞으로 몰려 온 시민과 보좌관들이 계엄해제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 담을 넘는 의원들을 돕고, 본청으로 몰려오는 군대를 맨몸으로 맞서서 싸웠다.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수많은 시민이 국회를 지키고 매일 밤 집회를 하고 때로는 국회 담벼락 아래에서 노숙까지 하면서 함께 싸우고 있다. 어린 학생부터 어르신,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아빠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친다. 이 거대한 물결에 참여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지. 추운 날씨도, 무장한 군인도 이 물결을 막지 못했다.

그날 밤 국회로 가는 길에 초등학생 딸아이가 뉴스를 보며 "혹시 엄마 이제 못 보는 거야" 하고 걱정하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다음 날엔 "독재를 막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지나고 나서야 아이의 메시지를 다시 읽으며 가슴이 찡했다. 지인들과 광명 주민들이 격려 메시지를 보내주시고, 중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던 옛 친구가 뉴스에서 나를 보았다며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했다. 소중한 사람들과 민주주의를 함께 지킬 수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겨울이다.
한국일보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경기광명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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