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16일 사망 80주기에 학위
한국 돌로 만든 도시샤大 윤동주 시비 - 2020년 11월 일본 오사카 주재 한국 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우호 행사 ‘윤동주의 시와 가을의 교토 답사’의 한 참석자가 교토 도시샤대 교정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도시샤대는 내년 2월 그의 80주기에 맞춰 사후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 /주오사카 대한민국총영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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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동주(1917~1945)가 순국 80주기인 내년 2월 16일, 재학한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다. 1875년 설립된 이 대학에서 사후 박사 학위를 받기는 처음으로,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가 대신 받을 예정이다.
도시샤대는 지난 12일 고하라 가쓰히로 총장이 주재하는 학장단 회의를 열고 ‘시인 윤동주에 대한 명예 문화 박사 학위 증정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도시샤대에서 공부한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내용이다. 당초 도시샤대의 실무진 검토 과정에서는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학위 증정’이란 예외를 인정하는 데 대한 우려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 기구인 학장단 회의에선 단과대 학장과 대학원 원장 열여섯 명 모두가 찬성했다. 최용훈 도시샤대 상대 학장은 “도시샤대는 자유로운 학풍의 150년 역사를 가진 대학”이라며 “당시 재학한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형무소로 끌려가서 옥사했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학내 구성원들이 여전히 짐으로 떠안고 있다”고 했다. 학교 측은 윤동주 80주기 기념행사도 대대적으로 치를 예정이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당시 윤동주. |
윤동주는 스물다섯 살이던 1942년 10월 도시샤대 영문과에 편입했다.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를 졸업한 뒤 그해 4월 도쿄에 있는 릿쿄대 영문과에 진학했다가 6개월 만에 학교를 옮겼다. 당시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 다니던 단짝 송몽규를 따라 교토에 간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종사촌 간으로 북간도의 민족 학교인 명동학교에서 연희전문학교까지 함께한 사이다. 일본 유학도 둘이서 같이 결심했다. 송몽규는 열아홉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한 문학도였고, 10대 때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도시샤대는 윤동주가 흠모한 정지용 시인의 모교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은 윤동주에게 자괴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유학용 졸업 증명서를 받으려면 일본식 이름(히라누마 도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유학을 앞두고 쓴 시 ‘참회록’에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라는 글로 그런 감정을 드러냈다.
1943년 7월 윤동주는 송몽규 등과 함께 조선 독립과 민족 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실제로 윤동주와 송몽규는 만날 때마다 문학과 조국의 독립을 이야기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의 활동을 ‘재(在)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이라고 이름 붙였다. 1944년 3월 교토지방재판소는 윤동주에게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치안유지법은 일제가 사회주의 운동 확산을 막으려고 제정한 법이다. 후일 공개된 재판 기록에 따르면 재판정에서 윤동주가 “조선 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이 가능하게 하려 한다”고 발언한 기록이 나왔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윤동주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28세로 순국(殉國)했다. 역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같은 형무소에 갇혔던 송몽규도 한 달 뒤 옥사했다. 송몽규의 증언 등을 통해 두 사람이 형무소에서 정체불명 주사를 맞았다고 알려졌고, 이 때문에 생체 실험 때문에 희생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동주는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가족이 수습한 윤동주의 유해는 1945년 3월 북간도 용정에 안장됐다. 광복 3년 뒤인 1948년에는 일제강점기 출간하지 않았던 유작 등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시집 서문(序文) 대신에 쓴 것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序詩)’다. 1968년 11월에는 모교 연세대 교정에 ‘서시’를 새긴 윤동주 시비(詩碑)가 건립됐다. 그때부터 27년이 지난 1995년엔 윤동주의 또 다른 모교 도시샤대에도 서시 시비가 만들어졌다. 교문에서 50m쯤 걸어 들어가 예배당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자필 원고 필체로 한국에서 가져온 돌에 새긴 시비를 볼 수 있다. 도시샤대는 매년 시비 앞에서 헌화식을 연다. 시비는 한국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주변에는 진달래와 무궁화가 심겼다.
☞교토 도시샤 대학
일본 교토시에 있는 대학으로 학생 수는 약 3만명이다. 1875년 설립된 ‘도시샤 영어학교’가 전신이다. 미국 애머스트대를 졸업한 니지마 조가 민간의 기부와 후원으로 설립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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