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4 (토)

‘퇴진 없는’ 윤석열이 쏘아올린 국가안보 ‘공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계엄 사태 후 실질적인 대책 없어…군 통수권과 외교권 뒤흔들어

‘자유민주주의 수호’ 외친 대통령이 스스로 ‘국가안보 구멍’ 만들어

경향신문

지난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한동훈 대표가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 대해 비판하자 강명구 의원이 일어나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간경향] ‘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요 근거로 이용된 ‘국가안보’가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에 의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정치적 책임을 회피한 윤 대통령과 ‘질서 있는 퇴진’을 내세운 국민의힘이 호응하는 사이 안보를 구성하는 군 통수권, 외교권이 사실상 공백 상태가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자신이 말한 ‘당에 일임’에는 ‘자진사퇴’가 포함되지 않았음도 분명히 했다. 이로써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통치권’의 실질적 행사는 장기간 부재 상태에 빠질 전망이다. 틈만 나면 “종북 세력 척결”을 외쳤던 윤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실제로 군 장성들은 지난 12월 3일 있었던 윤 대통령의 내란 시도 정황을 앞다투어 증언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12월 9일 “국군통수권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미국·일본뿐만 아니라 주요 우방국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법무부는 윤 대통령의 출국을 금지했다. 지난 12월 10일 “외교의 최종 결정권자는 여전히 윤 대통령”이라는 외교부의 원론적 입장과도 다른 상황이다. 유사시 윤 대통령이 군 통수권, 외교권을 정상적으로 발동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권력 공백으로 인한 안보위협을 빠르게 제거해야 하지만 계엄 사태 후 10여 일이 넘도록 실질적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국가안보’, ‘자유 헌정질서 수호’를 시급한 과제로 강조해왔던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함께 침묵했다. 지난 12월 7일 헌법에 따른 수습 절차인 ‘탄핵’을 무산시킨 국민의힘은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군 통수권을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당이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할 근거는 없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오호룡 국가정보원 1차장,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다.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공백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헌법 제68조 제2항이다. ‘궐위’는 대통령이 탄핵당해 파면되거나, 사망, 사퇴, 혹은 기타 사유로 대통령직이 공석이 된 경우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헌법 제71조다. 헌법은 권력 공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절차를 촘촘하게 준비해 뒀다. 반면, ‘질서 있는 퇴진’을 내세운 여당은 누가, 어떤 근거로, 언제까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2월 8일 한덕수 국무총리,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력하여 민생과 국정을 차질없이 챙긴다”고 발표한 내용이 전부다.

탄핵 없는 권한대행은 법적·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상황을 딱히 규정할 용어가 없을 정도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며 “윤 대통령 입장에서만 보면 정치적 책임은 피하고, 법적 책임에 대비할 시간을 성공적으로 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탄핵을 해도 헌재 판결부터 수습까지 3~4개월 이상 걸릴 상황에서 여당은 최고 국정책임자의 공백 기간만 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로 인한 문제는 안보와 외교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로 나타난다. 윤석열 정부는 대북 압박정책을 안보의 기본으로 삼았다. 이를 뒷받침할 수단은 ‘한·미동맹’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정작 ‘12·3 비상계엄 사태’는 안보를 분담한 미국에 사전 통보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사태 수습 과정에서도 미국과의 단절 상황은 이어졌다. 지난 12월 11일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계엄 당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가 상황 파악을 위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에게 전화했지만 이들은 전화기를 끄고 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 장관은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잘못된 정세 판단과 상황 판단으로 미국을 미스리드(mislead·잘못 이끌고)하고 싶지 않았다”며 이를 인정했다.

김 의원은 이날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윤석열 대통령,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태효 안보실 1차장 등 한국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어 온 사람들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지난 12월 5일, 8일에는 조 장관, 9일에는 한 총리가 골드버그 대사와 만났지만 현재 한국 외교의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만 미국에 확인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까지 40여 일도 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만든 외교적 불확실성이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흔드는 상황이다.

욕하면서 닮아간다


하야도 탄핵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은 한국 안보의 목표인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계엄 사태 이후 침묵을 지키던 북한은 지난 12월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심각한 통치 위기, 탄핵 위기에 처한 윤석열 괴뢰가 불의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파쇼 독재의 총칼을 국민에게 서슴없이 내대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온 괴뢰 한국 땅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어놓았다”는 논평을 냈다. 이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정권 차원의 공식 입장은 지난 10월 발생한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 등이 윤석열 정부에 의한 것이라는 확정적 증거가 나온 후 대남공세 형태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계엄 상황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재점화된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국지전을 유발하기 위해 획책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성공했다면 비상계엄의 근거가 됐을 것이란 논리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해당 사안이 남북갈등으로 확대돼도 이에 대응할 군 통수권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지금 윤 대통령과 여당의 행태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반란군이 ‘오늘 밤 때려죽여도 김일성은 안 내려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보수 정부·정당이 유사시 군을 이끌어야 할 최고 책임자를 공백 상태에 두고, 안보에 문제없으니 천천히 퇴진하라고 하는 것이 정상이냐”고 말했다. 양 교수는 “결국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말해온 안보는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라며 “대북강경책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정작 북한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반인권적 독재 국가로 비판해온 윤석열 정부는 되레 북한으로부터 ‘독재’, ‘총칼을 국민에게 내댔다’고 비판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진 사퇴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하며 스스로 국정 공백 장기화를 초래하는 중이다. 국회에서 탄핵이 결정되면 헌법재판소는 사건이 접수된 날로부터 최대 180일 이내에 심판을 마쳐야 한다. 파면될 경우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선거를 진행한다. 최대 240일간 정상적인 통치권 행사가 어려워진다. 윤 대통령 스스로 초래한 국정 공백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할지 지금은 가늠하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친 윤 대통령은 스스로 ‘국가안보’에 구멍을 만들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해제, 탄핵 순간 사라진 국회의원은 누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