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진흥원 ASMR 콘서트… 유튜브 2900만뷰 인기 콘텐츠
매듭장-지화장 등 장인 작업과정
23개 스피커로 360도 음향 감상
관객들 “편안해지는 소리에 홀려”
끈목으로 국화 모양 매듭을 만드는 박선경 매듭장 전승교육사.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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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13일 오후 8시경 서울 중구 한국의집 민속극장. 고요한 극장 안에 설치된 23개의 스피커를 통해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국가무형유산 매듭장 전승교육사인 박선경 씨(60)가 가는 실을 꼬아 끈목(여러 올의 실로 짠 끈)을 만드는 ‘다회치기’를 하며 낸 소리였다. 관객들은 8개의 실패와 다회틀이 부딪히면서 나는 맑은 소리는 물론이고 현대 무용을 하듯 리드미컬하게 실을 꼬는 박 씨의 몸짓에 빠져들었다. 반복되는 소리와 몸짓으로 심리적 쾌감과 안정을 주는 자율감각쾌락반응(ASMR)이 공연으로 구현된 것이다.
13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 민속극장에서 열린 ‘국가유산 ASMR 콘서트’에서 충북무형유산 증평 필장 보유자인 유필무 씨가 붓털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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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진흥원은 13, 14일 ‘국가유산 ASMR 콘서트―소리로 담아낸 국가유산’이란 콘서트를 처음 선보였다. 매듭장 전승교육사인 박 씨를 비롯해 경기무형유산 지화장 보유자인 석용 스님(57), 충북무형유산 증평 필장 보유자인 유필무 씨(63) 등 세 명이 작업 과정에서 내는 소리를 ‘감상’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생소한 ‘국가무형유산 ASMR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온라인의 열기 때문이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유튜브 국가유산채널의 ‘K-ASMR’ 시리즈의 누적 조회수는 현재까지 약 2913만 회. 특별한 대사 없이 소리에 집중한 작업 시연과 어우러진 영상미가 ASMR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오프라인 공연까지 이루진 것. 이번 공연에선 지화장(37만 회), 매듭장(43만 회), 필장(70만 회) 등 조회수가 높은 무형 유산들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에 종이를 갖다 댄 채 꽃 주름을 만들고 있는 경기무형유산 지화장 보유자 석용 스님.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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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소리’에 집중된 공연이었다. 석용 스님은 종이를 가위로 사각사각 자르는 소리와 종이 주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잘 들리게 하기 위해 무대 위 마이크에 종이를 바짝 갖다 댔다. 유필무 필장 보유자가 체로 붓털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쓱쓱 싹싹’ 소리는 관객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주최 측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360도 방향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공간 음향’을 적용해 관객들이 ASMR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집중도를 높이려 관객 수도 회당 50명으로 제한했다. 고요한 가운데 특정 소리가 반복되자 눈을 감는 사람들이 늘었다. 간혹 꾸벅꾸벅 조는 관객들도 보였다.
공연은 90분간 진행됐는데, 소리 시연과 대담, K-ASMR 영상 시청 등으로 구성됐다. 관객 정로라 씨(33)는 “매듭장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됐는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소리라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었다”며 “공연으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집중도 더 잘됐다”고 말했다.
장인들도 색다른 공연이 신선하다고 입을 모았다. 매듭장 전승교육사 박 씨는 “그동안 했던 전시나 체험 교육과 달리 관객들 앞에서 작업 과정을 선보이려니 떨렸다”면서도 “좋은 공연을 보고 단 몇 명이라도 전통공예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석용 스님도 “공연을 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무형유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며 “무형유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 씨는 “국가유산의 명맥이 끊기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국가유산진흥원은 추가 공연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한태 국가유산진흥원 헤리티지미디어팀장은 “ASMR을 국가유산에 다양하게 접목해 젊은 세대들이 유산을 더욱 친숙하게 여길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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