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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마감 후] 탄핵 대통령의 외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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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국제경제부장

이투데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던 2017년 이제 막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기 행정부는 한국과의 대화를 거절했습니다. 당시 한 트럼프 측근은 “죽은 권력과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매정했지만 나무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올해 우리는 또 탄핵 정국에 빠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트럼프가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강대국 미국의 정권교체 시기 물밑에서 조용히, 그리고 쉼 없이 돌아가야 할 대한민국 외교의 시계는 사실상 멈췄습니다.

외교는 철저한 실리주의가 기본입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감정이나 이념보다 우리 이익을 먼저 따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념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함부로 자극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탄핵정국을 둘러싸고 주변국이 원론만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를 하나하나 가늠해보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국회 탄핵 표결’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던 중국을 자극했습니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뜬금없이 ‘간첩법 개정’을 언급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인 사례를 들었습니다. 해당 발언으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한국은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곱씹어 봤습니다. 이익은커녕 외교적 마찰만 남겼습니다.

중국은 곧바로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측의 언급에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에 화가 나도 단단히 난 셈이지요.

중국은 한국의 비상계엄 속에서도 “내정에 논평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그랬던 중국이 이 정도 반응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외교가에서는 범상치 않은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최근 중국은 한국을 대상으로 비자 면제를 먼저 선언했습니다. 이에 조심스레 ‘한한령’ 완화를 기대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탄핵을 코앞에 둔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수포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나 살겠다”며 중국을 쑤셨고, 대한민국의 대중국 외교를 단박에 무너뜨렸습니다.

1988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 단계 성숙한 나라로 거듭났습니다. 예상도 못 했던 코로나19 대유행을 과학적이고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우리 스스로 일궈낸 갖가지 경제지표를 비롯해 소득수준과 교육·문화의 성숙도가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아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지요.

그러나 ‘12·3 비상계엄’으로 이 모든 게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헌정 역사상 가장 많은 계엄 사태를 맞은 나라’라는 부끄러운 꼬리표까지 달게 됐습니다.

따져보면 느닷없이 비상계엄 한 번으로 우리가 쌓아 올린 위상이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현 정부 들어 입에 담기 어려운 외교참사가 수없이 반복됐습니다. 외교적 결례와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대통령이 순방을 나가거나 외교에 나설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우리의 외교를 걱정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움이 없는 우리 외교 전문가들이 철저한 계산과 우리의 이익을 위해 시나리오를 짰고, 역대 대통령 모두 이를 충직하게 잘 따라주었던 것이지요.

수많은 외교 참사가 반복됐음에도 윤석열 정부가 우리 외교사에 일궈놓은 뚜렷한 업적이 하나가 있기는 합니다. “외교를 절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이투데이/김준형 기자 (junior@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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