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대중에 개방하고 실명 공개
"성폭행 쉬쉬하는 금기 깼다" 평가
가해자 왜곡된 인식은 여전히 숙제
프랑스 아내 강간 및 강간 사주 피해자인 지젤 펠리코가 19일 아비뇽법원에서 가해자인 전남편 도미니크의 징역 20년 선고 판결을 들은 뒤 이동하고 있다. 아비뇽=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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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들의 몫이 됐다."
아내 강간 및 강간 사주 혐의를 받는 프랑스 남성 도미니크 펠리코(72)가 19일(현지시간)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자 아비뇽법원 앞에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2011년부터 10년간 총 92차례에 걸쳐 아내를 기절시키고 성폭행당하도록 사주한 도미니크의 처벌을 반긴 것이다. 공범 72명 중 재판에 넘겨진 남성 49명도 이날 징역 3~5년이 각각 선고됐다.
무엇보다 프랑스 사회는 피해자 지젤 펠리코(71)의 용기에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이날 전했다. 경악스러운 피해를 입고도 당당하게 맞섰던 지젤의 태도가 자신의 성범죄 피해를 고발하지 못하는 프랑스 여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평가다.
'명시적 동의 원칙' 재확인
프랑스 사회는 지젤이 이번 재판을 대중에 전격 공개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비공개가 원칙인 성범죄 재판을 지난 9월 대중에 공개하고 실명으로 언론 앞에 나섬으로써 '피해자는 위축돼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쉈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와 정당들은 성명을 내고 "지젤의 강인함이 (성폭행 피해를 쉬쉬하는) 사회의 금기를 깨뜨렸다"고 강조했다. "용기를 내줘 감사하다"는 메모가 법원 건물을 뒤덮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공범들의 왜곡된 성인식도 주목을 받았다. 도미니크의 사주를 받은 공범들은 한결같이 "도미니크가 '지젤도 동의했다'고 말해서 성범죄인지 몰랐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범행 당시 지젤 본인은 의식을 잃어 동의 의사를 표할 수 없었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디언은 "이번 사건은 '(성관계에서)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하다'는 원칙을 프랑스 사회에 재확인시켰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국민들이 14일 아비뇽법원 울타리에 '아내 강간 및 강간 사주' 피해자 지젤 펠리코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적고 있다. 아비뇽=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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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대화 시작돼야"
이제 여성단체들은 '재판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날 판결로 도미니크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프랑스 내 성범죄와 그에 대한 묵인이 만연하다는 주장이다. 프랑스는 성폭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 비율이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성범죄 사건 94%가 처벌받지 않은 채 종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도미니크 공범들의 변호인들이 재판 결과를 환영하는 여성 단체를 겨냥해 "히스테릭하다"고 조롱하는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이 사회적 대화의 시작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문화평론가 리베카 솔닛은 이날 가디언 기고를 통해 "사법 제도만으로는 문화를 바꿀 수 없다"며 "성범죄를 정상화하는 풍토에 대해 남성들이 진지하게 대화하기 전에 사회의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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