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당국 내부적으로는 이번 과징금 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은근히 많았다고 합니다. 파나케이아가 2019년 국내 자본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라임펀드 사태와 연관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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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목적기계를 만드는 파나케이아의 옛 사명은 슈펙스비앤피입니다. 파나케이아는 몰라도 슈펙스비앤피는 익숙한 투자자가 있을 겁니다. 슈펙스비앤피는 라임자산운용이 2018년 1억달러(약 1400억원)를 대출했다가 돌려받지 못한 캄보디아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함께 진행했던 회사이기도 하죠. 당시 라임은 슈펙스비앤피 전환사채(CB) 17.08%(1197만9782주)를 인수했습니다.
금융당국과 검찰 조사에 따르면 슈펙스비앤피 경영진은 실제로는 하는 일이 없는 ‘깡통’ 자회사(크레아모터스)를 만듭니다. 이 자회사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도록 하고, 라임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해당 BW를 인수합니다. 라임 자금이 완전자본잠식 상태의 자회사를 거쳐 슈펙스비앤피 경영진 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를 만든 겁니다. 이 행위는 2018년부터 2019년 3분기까지 계속됩니다.
슈펙스비앤피는 자금 회수 가능성이 없는데도 이를 정상 자산인 것처럼 회계 처리해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을 49억원 과대 계상했다가 덜미를 잡혔습니다. 금융당국 조치와 별개로 슈펙스비앤피 경영진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라임자산운용과 연루 기업들의 비양심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고, 우리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습니다. 비록 10억원에 불과한 과징금일지라도 금융당국이 이번 징계에 최선을 다한 이유입니다. 최근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며 정부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실무자들은 “해야 할 일은 잘 마무리하자”며 제재 절차를 진행했다고 하네요.
6·3 대선이 다가옵니다. 어떤 후보가 당선의 기쁨을 누릴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문득 제2의 라임과 슈펙스비앤피 차단에 관심을 기울여 줄 대통령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시장에서는 교묘하고도 치밀한 위법 행위가 쉼 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현재 당국이 조사 필요성을 느끼는 ‘수상한’ 테마주만 추려도 70여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테마주 하나당 약 200일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들여다볼 인력은 금융위·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를 다 합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부실한 관리·감독의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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