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7 (일)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여기가 어디라고 총 들고 폼을 잡냐"… 또 상처 덧낸 5·18 기념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통령경호처 무장 요원 노출 경호
    묵념 때 '죽은 군인을 위한 노래' 틀고
    유족들 좌석 식장 뒷전으로 밀려


    한국일보

    5·18민주화운동 45주기인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정부 기념식 도중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저격수가 배치돼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날의 상처가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45년의 세월이 흘러 다 아문 줄 알았지만, 18일 5·18민주화운동 유족과 광주 시민들의 가슴속 부스럼엔 진물이 흘렀다. 이날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5·18 45주년 기념식이 지난해 12·3 내란의 밤을 소환한 터였다.

    이날 유족과 시민 등 2,500여 명이 참석한 기념식장에선 1980년 5월 이후 가장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예년보다 짧은 38분짜리 기념식 내내 대통령경호처 내 대응공격팀(Counter-Assault Team·CAT) 무장 요원들이 눈에 띄는 위력 경호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경호하는 이들은 복면을 쓴 채 제1묘역 언덕 좌·우 측에 3명씩 배치돼 기념식장을 줄곧 주시했다. 기념식장 뒤쪽에도 2명이 경호를 섰다. 5·18 기념일에, 그것도 기념식장에서 보란 듯이 완전 무장한 경호원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이들은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 영장 집행을 시도할 당시 대통령 관저를 순찰하던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등장에 기념식장과 5·18묘지는 한때 술렁였다. 한 시민은 "여기가 어디라고 총을 들고 폼을 잡고 지X이냐"고 목청을 높였다.

    한국일보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념식장에 도착한 뒤 시민 단체의 항의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오전 9시 36분쯤엔 "내란 공범"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기념식에 참석하려다가 "내란 부역자는 기념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기념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유족의 감정선을 건드린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기념식 식순 중 '묵념' 땐 기념식장에 '죽은 군인을 위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5·18기념재단은 "정부는 기념식을 준비할 때, 이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고려했어야 한다"며 "5·18 가해자인 군인을 위한 노래를 틀고, 무장 요원이 곳곳에서 무기를 들고 서 있는 기념식을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준비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의 홀대 논란도 불거졌다. 이 권한대행은 기념사에서 "오월의 광주가 보여줬던 연대와 통합의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라고 5·18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유족들 사이에선 "겉치레 말"이란 평가가 나왔다. 양재혁 5·18유족회장은 "이 권한대행이 5·18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아 진정성을 엿볼 수 없었다"며 "3분짜리 짧은 기념사 낭독에 식순에선 헌화도 빠진 데다 통상 맨 앞에 있던 유족 좌석도 뒷전(네번 째 줄)으로 밀려나 유감"이라고 말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식장을 빠져나가던 한 유족은 "한마디로 주객이 바뀌었어, 주객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예년과 사뭇 다른 추모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다. 기념식이 끝난 뒤 참배 광장에서 만난 류진석(67)씨는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참배 행렬이 이어지면서 대선 열기가 추모 분위기를 압도한 탓인지 일반 참배객이 확 줄었다"며 "여야 정치인들이 5월 영령들 넋을 위로하기보다 표를 구걸하러 온 것 같아 씁쓸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광주=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