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저마다 공약을 쏟아낸다. 한쪽이 공약을 발표하면, 반대편은 거친 말로 반박한다. 해법이 다르면 더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 부양이다. 누구는 당장 돈을 퍼붓자고 하고, 누구는 세금 감면이 먼저다.
그런데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내는 공약도 있다. 바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이 정책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다. 당시 140개 국정과제 중 33번이 '소상공인·자영업자 및 전통시장 활력 회복'이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100개 국정과제 중 28번에 '소상공인·자영업자 역량 강화'를 포함했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120개 중 무려 '1번' 과제로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완전한 회복과 새로운 도약'을 제시했다.
소상공인은 소상공인기본법에 따라 일정 기준을 갖춘 기업체다. 사업자등록증이 있고, 소기업 기준의 매출액을 충족한 채 종사자가 5인 또는 10인 미만이어야 한다(기준은 업종별로 다르다). 2022년 기준 소상공인은 766만개에 달하고, 1074만명이 일한다.
반면 자영업자는 법적 기반이 없는 통계 목적의 분류 기준이다. 경제활동인구의 취업자 중 비임금근로자를 일컫는다. 쉽게 말해 경제활동을 하지만 임금은 받지 않는 사장님을 말한다. 자영업자는 농업, 어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과 노점상 같은 무등록사업자를 포함한다. 지난해 기준 자영업자는 566만명으로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143만명,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423만명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분명 다르다. 소상공인은 기업체 기준이라 단위가 '개'지만, 자영업자는 사람 기준이라 단위가 '명'이다. 자영업자 정의가 더 포괄적이지만, 숫자는 소상공인이 더 많다. 소상공인은 법으로 정의하고 중소벤처기업부 소관이지만, 자영업자는 법적 정의나 관할 부처가 없다. 자영업자 중 73.9%가 사업자등록이 있는데 이들은 소상공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자영업자 중 108만명은 1차 산업에 종사하며 농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어업은 해양수산부가 주무부처다.
왜 선거 때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챙길까? 정치적인 이유다. 유권자를 직능별로 구분할 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만큼 큰 묶음은 없다. 이들은 실물경제 최전선에 있고, 돈을 퍼부으면 돈이 바로 돈다. 그러니 선거를 앞두곤 이들을 꼭 찾는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정책은 성장보다 보호다. 간이과세 기준금액을 높이는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기준 금액을 연매출 48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높였다. 20년 만이다. 간이과세자는 1.5~4%의 부가가치세율을 적용받는데 일반 과세의 절반도 안 된다. 이렇게 23만명이 혜택을 받았다. 또한 부가가치세 면제 기준도 매출액 300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높여 34만명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됐다. 이어 지난해 간이과세 기준 금액을 1억400만원으로 다시 높였다. 25만명이 새로운 기준을 적용받는다.
직접 돈을 퍼붓기도 한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27조원의 손실보전금과 손실보상금을 지원했다. 여기에 저리 융자 자금 4조원이 더해졌고, 57만명에게 잘못 지급한 재난지원금 8000억원은 돌려받지 않기로 했다. 당시 여야가 모두 합의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정책의 성과는 무엇일까? 소상공인의 지속적인 증가 말고는 찾기 힘들다. 소상공인은 2019년 653만개였는데 이후 매년 40만여 개씩 늘어 2022년 766만개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한편 자영업자는 2002년 621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해 지난해 566만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실제 증가한 소상공인은 더 많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폐업 사업자는 2020년 이후 매년 90만명 수준이었는데 2023년 98만5868명을 기록했다. 2006년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대 규모다. 물론 폐업자(명)와 소상공인(개)을 합하기 어렵지만, 폐업자를 고려하면 소상공인의 증가는 적어도 매년 100만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세청의 창업(신규 사업자) 숫자를 보면 얼추 맞다. 창업 수는 2020년 이후 매년 140만명 이상이다. 중기부(소상공인) 통계와 달리 국세청(창업) 통계는 부동산 임대업을 포함한다. 이를 고려해도 기록적인 창업이 매년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다산다사(多産多死)'를 경제의 역동성으로 평가했다. 많이 생기고, 많이 사라지니 그만큼 경제가 활발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은 전형적인 '다산소사(多産少死)' 구조다. 재난지원금이나 손실보전금 같은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죽지 않고 버텨야 했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고, 생기기만 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1~4월 소상공인만 가입하는 노란우산공제에서 폐업으로 공제금을 6072억원이나 돌려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2635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소상공인(개인사업자) 대출도 올해 1분기 말 719조원에 달했다. 1년 새 15조원가량 늘었다. 신용보증재단은 소상공인이 은행에서 대출받도록 보증을 해준다. 그러나 소상공인이 대출을 갚지 못해 지난해 재단이 대신 2조4005억원을 갚았다. 2022년의 4배가 넘는 금액이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 차주(대출받은 사람)는 312만명으로 전체 자영업자의 55%에 달한다. 총대출 규모는 1064조원으로, 1인당 3억4200만원이다. '취약 자영업자 차주'(다중채무자 중 저소득 또는 저신용인 차주)는 43만명으로, 1년 만에 3만명 증가했고 대출도 10조원가량 늘었다.
앞으로 정부 부담은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수 활성화다. 그런데 지금은 내수가 일시적인 경기 침체를 넘어 완벽한 저성장 국면이다. 이들이 살기 위해 정부에 의존하는 게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새판을 짜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원성은 높아진다. 정치인은 바로 반응한다. 선거가 뜨거워질수록 더 그렇다. 재정을 쏟아붓지만 경제가 워낙 밑바닥이니 효과는 없다. 원성은 다시 커지고 정치는 또 반응한다. 그러면서 정부부채는 늘어나고, 경제의 늪은 더 깊어진다. 돌아 돌아도 그 자리로 다시 오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지금 뫼비우스의 띠를 끊을 수 있는 적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려진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지난해 4157만원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2019년 4242만원)에 가장 근접했다. 그동안 경기 침체에 따른 서비스업 부진과 자영업자 간 경쟁 심화를 고려하면 매출은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 물가 상승으로 매출이 과대 반영된 측면은 있다고 해도, 적어도 팬데믹 이전과 매출 비교는 가능해졌다.
먼저 속된 말로 '버티면 준다'라는 기대를 깨야 한다. 팬데믹이라는 방패가 사라졌다. 더 지원을 요구할 명분도 없어졌다. 팬데믹으로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때는 어떻게 하든 버티는 게 상책이었다. 가게 문을 닫고 대리운전으로 벌어 이자를 내면 만기 연장이 가능했다. 정부나 소상공인이나 서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었다.
정책 설계가 세밀하지 못한 탓도 있다. 자영업자 대출 1064조원 중 개인사업자 대출이 714조원이고, 가계대출은 350조원이다. 여기서 개인사업자 대출 중 만기 일시상환(전체 대출의 40% 수준으로 추정)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폐업할라치면 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한다. 지금 운영 중인 새출발기금은 이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했다. 그러나 대출 갈아타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신청 조건마저 까다롭다. 최근에야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이 12만5000명까지 늘었고, 그 규모가 지난 4월 기준 20조원을 돌파했다. 그동안 기존 대출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조치가 2023년 9월 종료되면서 신청자가 부쩍 늘었다. 문턱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폐업과 채무조정을 하나로 묶는 전문기관이 출현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맞춰 후보들이 관련 공약을 내놨다. 배드뱅크(더불어민주당)나 소상공인 전문은행(국민의힘)이 그렇다. 출발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채무조정이 주된 업무가 될 것이다. 이들은 법인 형태 전문기관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새출발기금과 다르다. 다만 정부가 빚을 내 운영하기보다 민간 은행이 출자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동안 정부는 몇 차례 배드뱅크를 만들었지만 성과가 미흡했다. 민간이 운영하되 정부는 출자 또는 보증하거나 신용 회복을 연계하는 게 더 낫다.
적어도 채무 탕감은 반드시 폐업과 연계해야 한다. 그리고 직계나 친인척을 통한 재창업은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이로써 인위적으로라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줄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와 경제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폐업을 전제로 채무를 탕감해주면 이들의 재취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공공근로부터 요양보호사 등 정부가 줄 수 있는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챙겨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해외 취업도 적극 알선해야 한다.
재정정책을 통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돕는 건 필요하다. 그렇다고 궁핍한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인 이유로 지원을 남발하면 안 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민심 달래기'용으로 풀어놓을 현금성 지원 보따리가 이번에는 없었으면 한다. 공정하지도 않고, 폐해는 고스란히 경제가 떠안는다.
[오동윤 교수 동아대 경제학부·前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