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의 한 장면. 꼬마 월터와 아빠 디킨스가 2000년 예수를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는 영화로 북미 흥행 한국영화 1위에 올랐다. 모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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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어권 작품은 예외 없이 배척받는 북미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기생충'의 아성을 5년 만에 무너뜨리고 '북미 흥행 한국영화 1위' 타이틀을 가져간 작품이 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한국영화 '킹 오브 킹스'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국 시각효과(VFX) 베테랑인 장성호 감독이 연출한 예수 전기 영화 '킹 오브 킹스'가 오는 16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화제작으로 급부상한 '킹 오브 킹스'를 지난 2일 언론 시사회에서 살펴봤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디킨스는 도통 말을 듣지 않는 개구쟁이 막내 월터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결심한다. 아들 월터는 아서 왕을 동경해왔고, 작은 나무칼을 '엑스칼리버'로 부르며 집기를 부수는 사고뭉치였는데, 디킨스는 "아서 왕이 아닌 '왕 중의 왕(king of the kings)'은 따로 있다"며 입을 연다.
예수의 출생과 놀라운 사역,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연극적인 목소리로 들려주는 아빠 디킨스. 시큰둥하다가 곧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진 월터의 표정은 진지하다.
영화는 널리 알려진 예수의 생애를 고스란히 따른다.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디킨스와 월터가 단지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2000년 전 예수가 살던 베들레헴, 나사렛, 예루살렘으로 시공간을 옮겨 '시간 여행'을 직접 떠나는 모습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막 태어난 아기 예수를 환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월터. 또 예수가 일으키는 오병이어 기적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구원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예수의 공생애를 보며 눈물방울을 쏟기도 한다. '킹 오브 킹스'의 인류가 2000년간 학습했던 성서 이야기의 반복이 아니라, 아이 입장에 서서 예수를 근거리에서 '체험'하는 환시를 준다.
'교회 주일학교 영화'라는 일부 외신의 평가 이면에서, 영화에는 세계의 '꼬마 관객'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곳곳에 삽입됐다. 아빠의 반대에도 월터가 키우는 고양이 윌라가 그렇다. 월터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예루살렘을 향한다. 또래 나이의 꼬마 예수와 월터가 마주치는 장면은 놀라운 상상력을 선물한다.
그런데 왜 또 지금 '예수의 생애'일까. 아마도 그것은 '킹 오브 킹스'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가장 무해한 서사의 원형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휴대전화나 태블릿PC에서 매일 홍수처럼 유해한 영상이 쏟아지고, 곧 휘발되는 시대. '킹 오브 킹스'는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성스러운 이야기에 집중한 뒤 이를 무해하게 연출했다. 2000년간 살아남은 이야기가 바로 성서 아니던가. 어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같은 잔혹성은 원천 배제됐고(피 한 방울조차 흐르지 않는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처럼 성서를 패러디하는 도발이나 모험도 감행하지 않는다.
주인공 이름이 디킨스인 것은 이 영화의 원작이 19세기 영국 문호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디킨스의 비공개작으로 자녀들을 위한 소설이었는데, 그의 사후인 1930년대에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장 감독은 이를 원작으로 삼았다.
성우로 참여한 출연진도 화려하다.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디킨스는 배우 이병헌, 디킨스의 아내 캐서린은 이하늬가 맡았다. 예수의 근엄하고도 순결한 목소리는 '악역 전문' 진선규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는 본디오 빌라도는 신심 가득하기로 유명한 배우 차인표란 점이 놀랍다. 헤롯 왕은 권오중, 베드로는 양동근이 더빙했다.
봉 감독의 '기생충' 북미 흥행 실적은 5384만달러(3일 기준), '킹 오브 킹스'는 6026만달러(약 820억원)를 기록 중이다. 북미에서 개봉 3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미 '기생충'을 넘어선 것이다. 전 세계 흥행 실적으로 보면 비교가 되지 않는 수치지만, 지난 4월 부활절을 계기로 '킹 오브 킹스'는 역대급 흥행을 거뒀다. 연말까지 90개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라 K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 가능성이 매우 높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기대해볼 만해서다.
영화를 연출한 장 감독은 "사랑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 예수가 세상에 온 본질적인 이유도 사랑이지 않은가"라며 "찰스 디킨스와 아들이 관계를 회복하는 모습도 보여주려 했다. 사랑과 관계의 회복을 다룬 이야기라 크게 거부감 없이 관람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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