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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1 (화)

    진보 도시에 군 투입, 정부 셧다운… 미국은 '사실상 내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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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강공에 시카고·포틀랜드 긴장감
    “임금 소급 지급 없다” 연방 관료 인질
    反이민 항의 시위 유도 뒤 좌우 이념전


    한국일보

    JB 프리츠커(왼쪽)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와 브랜든 존슨 미 시카고 시장이 6일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방위군을 시카고에 투입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침을 비난하고 있다. 시카고=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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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내전을 방불케 하는 이념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선도 하나가 아니다. 민주당 텃밭인 진보 성향 도시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치안 목적 군대 투입 기도에 대항 중인 가운데, 해묵은 의료 보조금 공방으로 여야가 대치하며 자금이 끊긴 연방 정부의 ‘셧다운(업무 정지)’ 사태도 속절없이 길어지고 있다.

    민주당 도시를 군대 훈련장으로


    트럼프발(發) 진보 도시 군 투입 장악 시도에 의해 촉발된 미국 내 이념전쟁의 최전선은 일리노이주(州) 시카고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진영인 브랜던 존슨 시카고 시장,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 간 설전은 8일(현지시간) 극단으로 치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시카고 시장은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들을 보호하지 못했으니 감옥에 가야 한다. 프리츠커 주지사도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존슨 시장은 “트럼프가 흑인 남성을 부당하게 체포하려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라는 엑스(X) 글로, 프리츠커 주지사는 “트럼프는 독재자 지망생”이라는 미국 경제 매체 MSNBC 인터뷰로 반격했다. 전날 프리츠커 주지사는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동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행사 질문에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니고 치매까지 앓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시카고 주변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미국 북부사령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 시카고 광역권에는 약 500명의 주방위군이 배치된 상태다. 300명가량은 일리노이주 소속이고, 200명은 텍사스주에서 파견된 병력이다.

    명목은 연방 직원과 재산 보호다. ICE 요원들이 시카고에서 거칠게 이민 단속을 벌이자 항의 시위가 뒤따랐고 트럼프 대통령은 도시 내 폭력 범죄를 배후로 지목했다. 또 그 심각성이 연방 차원의 주방위군 파견이 불가피한 비상 사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주방위군은 평소 주지사에게 지휘권이 있지만 유사시에는 대통령 지시로 연방군처럼 동원될 수 있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소송으로 맞섰다. 그는 6일 소장에서 “트럼프는 군 복무자들을 우리 주의 도시들을 군사화하기 위한 정치적 노리개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노린 도시가 시카고만은 아니다. 앞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6월)와 수도 워싱턴(8월) 등에 치안 강화 명목으로 주방위군을 투입해 재미를 본 그는 지난달 27일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좌익과의) 전쟁 탓에 황폐해진” 도시로 묘사하며 병력 배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오리건 연방지법의 카린 이머거트 판사는 오리건주에 어느 주의 주방위군도 투입할 수 없도록 해 달라는 오리건주와 이웃 캘리포니아주의 가처분 신청을 4, 5일 잇달아 받아들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1807년 제정된 ‘내란법’ 발동 가능성마저 시사한 상황이다.

    주방위군 투입을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진보 도시 간 갈등은 주지사 간 불화로도 번졌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병 요청을 거부해 달라는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의 요청을 무시했다. 이 때문에 1908년 전미주지사협회(NGA) 결성 이래 한 세기 넘게 초당적·실용적 협력을 지속해 온 미국 주지사들 간 유대가 끊길 위기라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민주당과 한패 공무원을 인질로



    한국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해병대 기지에 모인 전 세계 미군 고위 장성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내부로부터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며 미국 일부 도시들을 군대의 훈련장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콴티코=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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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간의 또 다른 전선은 정부 셧다운이다. 미국 연방 상원은 셧다운 발생 8일째인 8일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임시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두 예산안 모두 가결에 필요한 60표를 얻지 못했다. 존 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9일에도 두 당 예산안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지만 둘 다 부결이 거의 확실하다고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전망했다.

    양당 모두 협상 타결을 서두를 유인이 없다는 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이다. 일단 수백만 미국인이 의존하고 있는 ‘오바마 케어(공공의료보험)’ 보조금 연장에 공화당이 합의해야 한다고 요구 중인 민주당은 양보 불가 방침이다. 공화당은 셧다운이 전적으로 민주당 책임이며, 차제에 공무원 대량 해고를 통한 정부 구조조정이 가능한 만큼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의 백악관 회담 자리에서 셧다운 책임을 민주당에 전가하며 “거의 가미카제(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자폭 특공대) 같은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연방 공무원 영구 해고 시도에 대해 “셧다운이 계속되면 많은 일자리가 영원히 복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급 휴직 상태인 공무원들 급여가 셧다운 종료 뒤 소급 지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달리 대우할 것”이라 답했다.

    분열은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활용해 온 집권·통치 전략이다. 우선 강경한 이민 단속·추방을 통해 진보 도시의 항의 시위와 폭력 행사를 유도한 뒤 치안 명분으로 병력을 투입한다. 이어 법정 공방으로 시간을 끌며 좌파를 테러 집단으로 낙인찍는 여론 몰이 선전전을 벌이는 수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에도 반(反)파시즘 운동 안티파(Antifa)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백악관 라운드테이블 자리에서 “좌익 테러 위협이 심각하다”며 “그들은 사람들에게 매우 위협적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한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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