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8 (토)

    "침략의 역사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433년 벽 허문 '참회'와 '용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충북 옥천군 가산사 '한일 평화의 날'
    임진왜란 왜장 후손, 선조의 잘못 사죄
    피해자 후손 만나 용서 빌고 화해 시간
    "과거 상처 딛고 화해와 평화 시대로"


    한국일보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장 후손과 조선 장수 후손이 함께 서명한 '참회' '화해' '평화' 족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가 왜장 후손들. 오른쪽 두 번째는 이날 행사를 주관한 충북 옥천군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 옥천=한덕동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일 갈등의 역사는 임진왜란이 시초라고 생각해요. 바로 이 침략 전쟁부터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두 나라가 미래 지향적으로 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10일 오후 충북 옥천군 안내면 가산사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및 한일 평화의 날’ 행사장. 임진왜란 참전 왜장 도리다 이치의 17세손 히로세 유이치(70)씨가 연단에 올라 조선을 짓밟은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자 참석자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역사학자인 그는 “임진왜란부터 풀어야 껄끄러운 양국 관계를 해소하고 평화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왜장 쵸소 가베모토치카의 17세손 히사다케 소마(24·대학생)씨도 “임진왜란을 알게 된 후 줄곧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이제야 사죄하는 것을 용서해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소마씨는 “한일 젊은이가 과거 상처를 딛고 화합의 시대로 가는 길에 일조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두 사람은 가산사 경내 호국충혼탑에서 거행된 임진왜란 의병·승병 추모제에도 참석해 제주를 올리며 거듭 사죄했다.

    한국일보

    왜장 후손 두 사람(오른쪽 첫 번째와 두 번째)이 '참회' 족자에 서명하고 있다. 옥천=한덕동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왜장 후손을 맞이한 이들은 이종학(이순신 장군 13세손), 황의옥(황진 장군 13세손)씨 등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맞선 조선군 장수 후손 여섯 명. 황씨는 “참혹하게 돌아가신 조상을 생각하면 용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장 후손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고 나니 응어리가 풀린 것 같다. 사죄를 받아들이고 모두 용서한다”고 화답했다. 이씨는 “깊은 성찰이 담긴 사과가 답답한 마음을 열어줬다”며 “아픈 역사의 고리를 풀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두 분의 결단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양쪽 후손은 손을 맞잡고 부둥켜안으며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일보

    왜장 후손 히사다케 소마씨가 조선을 침략한 선조의 잘못을 사죄하고 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역사의 과오를 인정해야 미래가 열린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옥천=한덕동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후 붓글씨로 ‘참회’ ‘화해’ ‘평화’라고 쓴 족자에 왜장 후손과 조선 장수 후손이 각각 서명하고 교환하며 양국의 평화를 기원했다. ‘평화’ 족자에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도 서명했다. 권 장관은 기념사에서 “과거사의 진정한 해법은 상대의 상처를 진심으로 어루만지고 함께 새로운 길을 열어가자고 마음을 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 족자는 3개를 제작해 양쪽 후손 측과 국가보훈부, 가산사 호국문화체험관에 보관하기로 했다.

    한국일보

    왜장 후손과 조선 장수 후손이 가산사 표충각 앞에서 손을 잡았다. 왼쪽부터 서예원 장군의 후손 서재덕씨, 황진 장군 후손 황의옥씨, 이순신 장군 후손 이종학씨, 왜장 쵸소 가베모토치카 후손 히사다케 소마씨, 왜장 도리다 이치 후손 히로세 유이치씨. 옥천=한덕동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자리는 임진왜란사에 정통한 김문길 박사(부산외대 일본학과 명예교수),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의 노력 덕에 성사됐다. 왜군이 베어 간 조선인 귀·코무덤(耳鼻塚)을 연구해 온 두 사람은 3년 전 일본에서 열린 귀·코무덤 위령제에서 만나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한 행사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김 박사는 “지원 스님이 주지로 있는 가산사가 임진왜란 의병장 조헌과 승병장 영규 대사의 진영(초상화)을 모신 절이라는 사실을 알고, 평소 친분이 있던 히로세 유이치씨와 논의해 이번 참회와 용서의 자리를 주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왜장 후손 히로세 유이치(왼쪽)씨와 히사다케 소마씨가 임진왜란 의병을 기리는 호국충혼탑 앞에 차린 제상에 일본에서 가져온 술을 올리고 있다. 이 술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끌고 간 조선인이 비법을 전수해 빚은 전통주다. 옥천=한덕동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사찰인 가산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이 군영으로 사용했다. 숙종 때 호국도량으로 지정돼 의병장인 조헌 장군과 영규 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제향을 지냈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 운동 중심지가 될 것을 두려워한 조선총독부가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탈하고 불온 사찰로 지목해 탄압하기도 했다. 사찰 측은 국가 지원을 받아 2019년 의·승병을 기리는 호국충혼탑을 세우고, 2022년 호국문화체험관을 열었다.

    지원 스님은 “임진왜란 발발 433년 만에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을 계기로 화해와 용서, 나아가 평화의 미래로 함께 가자는 취지”라며 “이번 후손의 만남이 과거를 잊지 않되 원한에 머물지 않는 성숙한 한일 관계로 열매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나온 왜장 후손은 행사 전에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을 찾아 참배했다. 칠백의총은 금산 연곤평(延昆坪)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의병 700여 명의 시신을 수습한 무덤이다. 왜장 후손은 가산사 행사를 마친 후에는 충북 청주시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 묘소와 의암 손병희 선생 생가를 둘러보고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가 마련한 공연을 관람했다. 이들은 11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을 돌아본 뒤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옥천= 글 사진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