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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8 (토)

    [현장의 시각] 외교는 문서로 완성된다… 관세 협상 10주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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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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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미국이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한 7월 30일로부터 10주가 지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관세 협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협상이 장기화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설명하지만, ‘큰 그림’(Big Picture)에서도 양국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은 양국이 타결됐다고 밝힌 시점부터 의문 투성이였다. 농산물 문제가 대표적이다. 우리 측 협상 대표단은 ‘쌀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에 대해선 추가적인 시장 개방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미 측의 설명은 달랐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7월 31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국은 15%의 관세를 내게 될 것이며, 자동차와 쌀 같은 미국산 제품에 대해 역사적 개방을 할 것(providing historic market access to American goods like autos and rice)”이라고 말했다.

    합의의 핵심 키인 ‘3500억달러 투자’의 성격에 대한 정부의 당초 설명도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관세협상 타결 직후 가진 긴급 브리핑에서 “직접투자 비율은 높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으로 본다”라고 설명했지만,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은 선불(It’s up front)”이라고 선을 그었다.

    8월 25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 결과도 의아함을 더했다. 정상회담에선 양국 관계를 평가하고 향후 발전 방향을 담은 합의문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첫 정상회담에선 이런 합의문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합의문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서로 얘기가 잘 된 회담”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들의 말과 많이 다른 상황이다. 말의 잔치가 끝난 자리엔 산업계의 고통이 남았다. 대미 최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의 경우, 일본과 독일이 15% 관세를 적용받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25% 관세를 물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난 8월 대미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2% 감소했다. 9월에는 조업 일수가 작년보다 4일이나 더 많았음에도, 대미 수출이 1.4% 감소했다. 한국의 주요 9대 수출국 중 미국만 유일하게 수출이 줄었다.

    이런 어려움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말 발표한 4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에서 “미국의 관세 부담이 본격화되면서 대미 수출 기업은 물론 중소 협력업체의 경영 여건까지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빈 수레의 실상이 드러났기 때문일까. 이제 여권에선 반미 선동식 발언까지 쏟아지고 있다. 5선 중진 의원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길목을 막고 돈을 뜯어내는 깡패와 다를 바 없다”고 했고, 문금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트럼프 깡패 짓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정부가 통상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한 지 10주가 지났지만 정부는 아직 미국과 진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 신뢰는 점점 약해지고,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원·달러 환율은 1420원을 넘나들고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과 기업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다.

    이번 통상 협상은 긴 싸움이 될 수 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국익을 지키는 과정에서 국민을 우군으로 만드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지금 정부와 여당에 요구되는 것은 ‘솔직함’과 ‘엄중함’이다. 낙관론은 경계해야 하고, 거친 발언도 삼가는 것이 좋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외교가에서 회자되는 말이 있다. ‘외교는 말이 아니라 문서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양국 고위급이 사인한 합의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 당국자는 종종 “우리 ‘비망록’에 그렇게 적어뒀다”고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후로는 말보다 문서로, 해석보다 사실로 국민 앞에 서는 정부이길 바란다.

    윤희훈 기자(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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