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 타인 응우옌 '두 얼굴의 남자' 국내 출간
"삶에서 지우기 어렵게 하는 게 트럼프 전략"
비엣 타인 응우옌은 작가로서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정부의 검열뿐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민음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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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을 점령하자 미국으로 탈출한 '보트피플' 행렬에는 당시 4세였던 비엣 타인 응우옌이 있었다. 그는 아시아계 '모범적 소수자'의 전형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일군 부모 밑에서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11세 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 그의 세계가 흔들리기 전까진. 베트남전을 다루는 영화에서 백인 주인공은 응우옌과 같은 피부색에 같은 말을 하는 동족에게 총을 난사한다. "그 순간 너는 둘로 쪼개져 버린다. 너는 학살을 저지른 미국인인가? 아니면 학살당한 베트남인인가?"
34년이 흐른 후 응우옌은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첫 소설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미국 HBO 오리지널 시리즈의 원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베트남, 미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두 얼굴의 남자'
"너무 고통스러워 어른이 되며 잊었던 오래전 기억들이 거기 담겼습니다." 4일 한국 언론과 화상으로 만난 응우옌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자전적 에세이 '두 얼굴의 남자'를 국내 출간했다. 베트남과 미국, 두 나라에 속하는 동시에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삶은, 그를 계속 쓰게 한다. 그는 "내면 가장 깊이 있는 것을 끄집어내 마주하는 게 고통스럽고 두려운 순간이었다"며 "특히 전쟁과 식민 지배의 경험은 파편화된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글이 시와 비평, 독백이 뒤섞인 형태에 글자 크기나 문단 배열도 자유롭게 구성된 이유다. '나'가 아닌 2인칭 '너'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도 특징적이다. 정체성의 혼란을 하나의 문학적 형식으로 구현한 셈이다.
책은 응우옌이 대학생이던 19세 때 당시 정신병동에 입원한 어머니에 대해 쓴 에세이에서 출발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불명의 존재다. 그는 "어머니는 역경을 극복한 강하고 지혜로운 분이지만 결국 그 어려움을 감당치 못하고 정신병동 신세를 졌다"며 "어머니의 이런 강함과 약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이내 어머니 개인의 이야기는 곧 베트남의 역사와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다. "20세기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일들, 식민 지배와 전쟁, 인종 차별의 역사 속에서 어머니가 겪은 일들은 단지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수많은 베트남인 특히 다수의 베트남 여성의 삶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두 얼굴의 남자·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신소희 옮김·민음사 발행·464쪽·2만 원 |
'동조자' 3부작 마지막 소설은 "LA 코리아타운 이야기"
그의 글은 가장 사적이기에 가장 정치적이다.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위해 그는 기꺼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작가로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은 단순히 나 자신을 속이는 것뿐 아니라 내 예술작품을 속이는 것"이라며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쓰는 대신 검은 네모(■)로 처리했다. 그는 "관심받는 것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을 우리 삶에서 지워내는 게 무척 어려운데 바로 그게 트럼프의 정치적 전략"이라며 "트럼프 이름을 '블랙박스'로 둠으로써 그를 무시하고, 그의 전략에 반하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조자'와 후속작인 '헌신자'(2022)를 잇는 3번째 책을 쓸 계획이다. 그는 "1984년 미국을 배경으로, LA 코리아타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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