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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5 (토)

    엉터리 자산 운용...사모펀드 통해 투자한 미국 부동산, 알고 보니 3년 전 '강제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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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년 만기' 펀드에 은퇴자금 투자한 A씨
    올해 초 운용사로부터 "자산 무단 매각" 통보
    현지 등기 확인하니 이미 '2022년' 소유자 변경
    작년에도 배당받아...매각 사실 숨기려는 의도?
    A씨 "운용사·판매사·신탁사 책임 전가 사각지대"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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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부동산에 투자한 사모펀드가 기초자산인 부동산을 잃은 지 3년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파악한 사건이 발생했다. 은퇴 자금을 맡긴 투자자는 부동산이 매각된 이후에도 배당금을 받으면서 펀드가 안정적으로 운용된다고 믿었지만, 갑작스런 '자산 무단 매각' 통보에 투자금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됐다.

    투자자 측은 사건 진행 과정에서 펀드 판매사와 운용사, 신탁사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투자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자본시장법이 오히려 투자자 보호 사각지대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은퇴생활자 A씨는 2018년 10월 판매사인 S사 직원의 권유로 K자산운용사의 미국 부동산 사모펀드에 투자했다. 미국 뉴욕 시내의 부동산에 투자해 임대료를 바탕으로 매년 배당을 지급받고 5년 뒤 만기에는 부동산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펀드 가입 이후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매년 한 차례 배당금이 꼬박꼬박 지급됐다. 이미 운용사 측에서 투자한 부동산의 소유권 증서(Deed)도 제시했기에 A씨도 펀드가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운용사는 만기를 앞둔 2023년 2월부터 A씨에게 "최적의 매각 시점과 매수자를 물색하고 있다"며 투자자에게 부여된 상환 우선권을 포기해 달라고 제안했다. 당장 자산 매각이 어려운 만큼 펀드 만기를 연장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A씨는 판매사인 S사를 통해 기초자산 매각과 펀드 해지를 수차례 요청했다.

    일은 그 이후 벌어졌다. 운용사 측은 올해 5월 기초자산인 부동산이 무단 매각됐다고 통보했다. 이에 A씨가 변호사를 통해 뉴욕시의 공공 데이터베이스(ACRIS)로 해당 부동산 관련 이력을 확인해 봤더니, 투자 부동산은 약 3년 전인 2022년 9월 소유자가 변경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기초자산이 되는 부동산이 없는 상태에서 운용사가 수차례 매각을 계획 중이라며 투자자를 속여왔다는 게 A씨 측의 주장이다. 심지어 운용사는 부동산이 팔린 상태인 지난해 8월에도 A씨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A씨 측은 운용사와 판매사, 신탁사 등이 자본시장법상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운용사가 소유권 이전 사실을 3년 가까이 인지하지 못한 것은 기초자산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마저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신탁사의 감시 의무, 판매사의 설명 의무 위반까지 결합한 금융사고라는 것이 A씨 측 주장이다. 다만 운용사 측은 '정상적인 투자 관리 과정에서 감시하기 어려운 성격'이라고 항변했다.

    금감원도 9월부터 A씨 사건을 접수했지만, 분쟁조정 업무가 늘어났다는 이유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A씨 측 관계자는 "운용사, 판매사, 신탁사 모두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고, 투자자의 피해 보전을 위한 실질적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며 "감독당국에 호소해도 분쟁 업무 폭주를 이유로 구제받는 데 시간이 걸리고, 수사기관에서도 민사 사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진전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K자산운용 관계자는 "현지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등 투자자 재산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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