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89년 11월 5일 86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1986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2024년 4월 영국 명문 음반사 데카에서 쇼팽 연습곡으로 데뷔 음반을 내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알프레드 코르토 같은 거장의 이름을 들며 말했다.
“이들처럼 근본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임윤찬은 ‘근본’의 기준에 대해 “귀가 들을 시간도 없이 곧바로 심장을 강타하는 것”이라고 했다. (2024년 4월 21일 자 A25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16세 때인 2010년 인터뷰에서 본보기로 생각하는 피아니스트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를 꼽았다.(2010년 2월 1일 자 A20면)
2008년 ‘중국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26세 피아니스트 랑랑도 이상적인 모델로 호로비츠를 꼽았다. “누구도 흉내 내거나 복제할 수 없는, 독특한 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2008년 9월 1일 자 A23면)이라고 했다.
세 젊은 천재가 공통으로 언급한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는 ‘20세기 최고 피아니스트’ ‘마지막 로맨티시스트’로 꼽힌다.
20세기 톱 피아니스트 호로비츠. 1973년 6월 30일자. |
호로비츠는 1903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했다. 1925년부터 서유럽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1928년 미국 카네기홀 데뷔 후 미국인으로 살았다. 그는 오랜 기간 러시아(소련) 출신으로 알려졌다. 1989년 11월 5일 별세했을 때 부음 기사도 “20세기 최고의 피아노 연주가로 추앙받던 소련 태생의 피아니스트”(1989년 11월 7일 자 11면)라고 표현했다. 고향 우크라이나는 호로비츠가 타계하고 2년 후인 1991년에서야 독립국 지위를 얻었다.
호로비츠는 러시아를 떠난 지 61년 만인 1986년 4월 20일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귀국’ 연주회를 가졌다. 연주는 ‘호로비츠 인 모스코’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83세 거장의 이 공연은 TV로 생중계되며 동서 냉전의 화해 무드가 가져온 감동적 공연으로 회자됐다.
모스크바의 호로비츠. 1986년 4월 30일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당시 정영일 조선일보 편집위원은 AFKN을 통해 녹화 실황 연주를 보고 “무대로 걸어나오는 걸음걸이로 그가 81세(83세) 노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할 뿐 호로비츠의 음악은 젊음과 원숙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1986년 4월 30일 자 8면)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람인 호로비츠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귀국 공연’ 한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김태훈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한국의 사정과 비교했다.
“우리라면 식민지 조선인이 서울 아닌 도쿄에서 귀국 연주회를 하고 박수받았다고 손가락질당했을 장면이다. (중략) 우크라이나는 무장 독립지사들도, 문화적 역량을 보여준 예술인들도 모두 자국의 자랑으로 아우른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나라를 지킨 전쟁 영웅도, 안익태와 홍난파 같은 자랑스러운 예술인도 친일 굴레를 씌워 모욕한다.”(2023년 7월 19일 자 A35면)
우크라이나는 평생 러시아인으로 알려졌던 그를 우크라이나의 예술인으로 기려 독립 4년 후인 1995년 호로비츠 국제 콩쿠르를 창설했다.
호로비츠 별세. 1989년 11월 7일자. |
호로비츠는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독특한 주법으로 연주한다. 일반적으로 피아노를 배울 때 둥글게 구부러진 손 모양을 권장한다. 호로비츠는 손 전체를 평평하게 펴서 건반을 누른다. 손가락을 아래위로 움직이는 동작도 힘을 주어 튕기는 방법을 썼다. 이런 주법으로 “마치 3개의 손이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정확한 터치와 격정적 연주 기교” “88개의 건반으로 오케스트라의 마력을 만들어내는 ‘피아노 음악의 전설’”(1989년 11월 7일 자 11면)이란 평가를 받았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호로비츠의 독창적 주법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금기 사항에 가까운 주법에서 나오는 변화무쌍한 색채와 날렵한 기교적 효과,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강렬한 음향은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들도 매료시켰죠. (중략) 그의 스타일을 일방적으로 흉내 내거나 따르려고 한 피아니스트들은 대부분 실패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호로비츠의 주법과 음악 세계는 오직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져 유일무이하다고 하겠습니다.”(2019년 12월 20일 자 A32면)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포스터.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06년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호로비츠처럼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부족한 재능에 좌절했던 피아노 학원 교사 김지수(엄정화)가 천재 음악 소년을 만나 서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