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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에 빠진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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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의 탄생 이유는 탈중앙화와 익명성

본질이 퇴색되고 있는 가상통화와 블록체인

가상통화 시장이 뜨거울수록 가치와 비전에 대해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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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2008년 10월 익명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개발한다. 그가 쓴 논문의 서론을 보면 그는 철저히 중앙 금융기관을 배제하려 했다.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중앙 통제에서 벗어나 모든 거래 참여자가 정보를 검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정보를 담은 것이 블록, 그 블록들을 이어주는 것이 체인이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 ‘블록체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가상통화의 가치는 블록체인에서 온다. 정량적으론 재무와 매출, 영업이익에서 오고 정성적으론 기업의 비전, 오너리스크 등을 따져서 산출되는 주식과 달리 가상통화는 ‘탈중앙화’와 ‘익명성’을 지닌 블록체인을 두고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사토시 나카토모가 비트코인을 만들고 11년이 지난 지금 가상통화 시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많은 사람들이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거래되고 있는 가상통화들이 과연 탈중앙화와 익명성이란 근본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과연 사토시 나카모토의 바람대로 블록체인은 나아가고 있을까.

탈중앙화는 무너졌다

앞서 말했듯 가상통화의 핵심은 탈중앙화다. 모든 거래 참여자들이 정보 처리에 참여하는 비효율성을 감수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의 가상통화는 탈중앙화를 이뤄냈다고 보기 힘들다.


이병욱 크라스랩 대표는 “현재 비트코인의 90%는 10명 안팎의 채굴자들이 보유하고 있다”며 “사토시 나카모토가 원했던 탈중앙화와 거리가 먼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가상통화 데이터업체 글래스노드는 지금까지 생산된 비트코인의 20%만 유통되고 있고 나머지는 장기 투자자들이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가 전체 비트코인의 시세를 주무를 수 있는 셈이다.


그나마 비트코인은 개인이 전기와 그래픽카드를 투자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채굴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 주체가 어느 정도 분산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알트코인들은 소수가 의사결정하고 있다.


비탈릭 부테린이란 개발자가 만든 이더리움의 의사결정은 철저히 소수가 한다. 현재 이더리움의 발행량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부테린 등 이더리움 재단이 발행량을 제한하겠다고 하면 상황이 급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부테린은 2018년 이더리움의 발행량을 고정하자는 의견서를 개발자 회의에 제출한 바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더리움 투자자들은 부테린과 이더리움 재단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에 전념할 것이라는 막연한 신뢰에 기대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배제하려 했던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인 중앙 금융기관과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었던 익명성…보장되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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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인 익명성도 보장된다고 보기 힘들다. 가상통화 시장이 개인정보를 인증해야만 재화를 거래할 수 있는 기존 시스템에 편입돼 있기 때문이다.


가상통화 거래소를 통해 거래해야 하는 구조상 익명성 보장은 힘들어졌다. 2017~2018년 가상통화 열풍을 겪은 후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는 실명 계좌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오는 9월24일까지 가상통화 거래소는 은행이 발급한 실명계좌 등 요건을 충족해야 운영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가상통화 거래소 사업자는 자금세탁 의심 거래 대상을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해야 한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가상통화 거래소 바이낸스에선 거래 한도를 높이려면 신원인증을 해야 한다. 여권과 같은 신분증을 사진 찍어 업로드하고 거주 국가, 생년월일을 넣어야 한다. 심지어 당장 자신의 얼굴을 사진 찍어서 본인이 신원인증을 진행 중이라는 것도 증명해야 한다. 얼굴을 끄덕이며 인증해야 해 불편을 호소하는 투자자들도 있었다.


이미 가상통화의 익명성이 무너진 사례는 많다. 가장 대표적 예가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이다. 조주빈은 범죄 수익을 은닉하기 위해 비트코인, 이더리움, 모네로 등 가상통화를 애용했다. 특히 모네로는 익명성에 초점을 둔 가상통화여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범죄수익은 추적됐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애초에 가상통화 지갑 주소를 통해 입출금 내역 추적이 가능하다. 모네로는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해 지갑 주소를 알더라도 자금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지만 거래소를 통해 거래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 빗썸뿐만 아니라 바이낸스, 후오비, 쿠코인 등 글로벌 거래소도 n번방 사건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치가 오히려 중앙에서 탄생…모순에 빠진 가상통화

탈중앙화와 익명성이 무너졌지만 가상통화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최근 흐름을 보면 가상통화의 가치는 중앙에서 기인한다.


가상통화의 상승세를 이끌었던 소식들은 국가와 기업으로의 편입과 관련돼 있다. 탈중앙화를 목표하는 가상통화에 악재로 작용해야 할 소식이 오히려 호재로 쓰이는 것이다. 지난 2월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에서 상장지수펀드(ETF)가 거래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시장에도 ETF가 상장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2018년부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불법 사용 가능성을 이유로 상장을 거부하자 가상통화 업계는 스스로 탈중앙화와 익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상통화 ETF 상장을 준비했다. 홍 교수는 “탈중앙화를 위해 만들어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국가 및 제도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며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에서 만든 클레이튼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블록체인 기술과 거리가 멀다는 논란에 빠졌다. 스스로 탈중앙화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과거 페이스북이 내놓은 가상통화 리브라에 대해 보안과 의사결정을 페이스북 자체에서 하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클레이튼을 소개하고 있는 클레이튼독스에 따르면 ‘거버넌스 카운슬’이란 의사결정기구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탈중앙화를 기치로 만들어진 블록체인이 스스로 탈중앙화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다”며 “중앙화된 탈중앙화 기술 블록체인이라고 불러도 마땅할 만큼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의 본질과 거리가 멀지만 클레이튼의 가격은 지난 2월 500원대에서 이달 5000원대로 급상승했다. 제도권에 편입돼 있는 카카오라는 기존 대기업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가상통화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클레이튼의 시가총액은 10일 기준 약 8조4453억원을 기록했다. 우리가 잘 아는 기업 KT, 현대건설, 이마트보다도 시총이 크다. 간편 결제 기업 다날에서 발행한 페이코인의 시총은 같은 시간 약 10조7000억원으로 다날 시총 5585억원의 19배 수준이다.

블록체인의 가치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때

가상통화 시장과 블록체인이 뜨거운 관심을 받는 만큼 신중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근 ‘상폐빔’이라고 불리며 상장폐지를 앞둔 알트코인이 급등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등 자칫 큰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완벽한 보안과 기술이라는 건 없다”며 “블록체인 기술은 무조건 옳다는 자세보다는 철저히 검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이 탈중앙화와 익명성을 잃어버렸다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 대표는 “블록체인이 정확히 어떤 목표를 위해 성장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이란 기술이 사회에 가져오는 손익과 어떻게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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